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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210612 지리산 둘레길 2구간(운봉-인월)

by 명산 김승곤 2021. 6. 13.

지리산 둘레길 2구간

1.구간   : 운봉-서림공원-비전마을-흥부골자연휴양림-월평마을-(구)인월교
2.일자   : 2021. 06.12 (토요일)
3.거리   : (오룩스-10.08km, 공식거리-9.9km)
             운봉읍 –(0.2km)- 서림공원(0.2km) –(0.8km)- 북천마을 –(1.1km)- 신기마을 –(2km)- 비전마을 –(0.8km)- 군화동 –(2.9km)- 흥부골자연휴양림  –(1.5km)- 달오름마을 –(0.2km)- 구인월교 
4.동무   : 하진수님 부부,아내

◎ 인월 파출소 앞(08:50)
◎ 지리산 둘레길 2구간 이정표(09:05)
◎ 서림공원(09:10)
◎ 동편제마을 (10:00)
◎ 비전마을(10:20)
◎ 옥계호(11:05)
◎ 흥부골 자연휴양림(11:45)
◎ 달오름 마을(12:20)
◎ 구)인월교 (12:25)



지리산 둘레길..............
두번째구간이 시작되었다.
운봉에서 인월까지...
지리산 둘레길 홈페이지에서는 공식거리와 시간은 9.9km, 4시간이 소요된다고 안내하고 있다.
그리고 난이도는 하 라고 해놓았다.
비교적 짧은 거리라 아쉬움이 없지 않아 있지만 진수형님이 오후까지 계획한지라 하루도 모지랄것 같은 그런 스케줄이다. 

어제 대봉산 모노레일 투어와 양지가든에서 돼지머리 수육과 맥주+소주로 비교적 가벼운 저녁(?)까지는 좋았지만 
집으로 들어와서 산삼주라는 거창한 라벨를 가진 담근술에 아침까지 속이 부디끼게  한건 사실이다.

6월 12일.
아침부터 바빴다.
앵두수확, 체리수확, 살구 수확,정구지 수확, 그리고 해충약 치기.....
다행인건 어제 도착하면서 체리밭과 주변을 처삼촌 벌초하듯 예초를 한덕분으로 그마나 깨끗한 이미지이지만 여전히 손이 가지않은 곳은 엉망인게 사실이다,
그도 그럴것이 자주갈적에는 1달에 2~3번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1달에 한번정도니 오죽하겠나 싶다.
08시 출발 예정 시간은 30분 딜레이되고....
그리고 인월까진 2~30분정도 거리라...

08시 50분 
목적한 인월파출소 주차장에 주차를 한다.
사전 정보에 의하면 09시 00에 이곳을 지나는 남원행 버스를 이용할 예정이다.
그런데 성질(?) 급한 진수형님....
카카오택시를 콜했다고 한다.
예상요금은 6900원이 나온다고....
그리고 잠시후 나타난 택시......
기사는 인월에서 운봉까지 10,000원을 받아야 한다.
아니다. 카카오 콜을 받으면 메터요금을 받야야 한다..등등이다.
잠시후 도착하는 운봉 그러니까 지리산 2구간 출발점이다.
택시요금은 8900원이다.

지리산 둘레길 2구간 출발점이다.
홈페이지를  보면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동천리와 남원시 인월면 인월리를 잇는 9.9km의 지리산길. 
운봉-인월 구간은 오른쪽으로 바래봉, 고리봉을 잇는 지리산 서북 능선을 조망하고 왼쪽으로는 고남산,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바라보며 운봉고원을 걷는 길이라고 나와 있다.
또, 황산대첩비, 국악의성지, 송흥록 생가 등 역사적인 요소들을 즐기면서 걷기에 좋은 곳이라는 설명이다.
지리산 둘레길 2구간 출발안내판을 배경으로 카메라에 담고는 출발한다.

길 양옆으로 세워진 남원 서천리 당산 즉 돌장승이다. 
당산은 마을의 수호신인 당산신(당산할아버지, 당산할머니)을 모시고 마을의 풍요와 평안 등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남원 서천리 당산에는 남녀 한 쌍의 돌장승이 서있다. 
외형상으로는 남녀를 구분하기 쉽지 않은데 각각의 돌장승에는 방어대장군, 진서대장군 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악한 기운을 막는다는 뜻이다. 
남원 서천리 돌장승은 마을을 수호한다는 신앙적 의미뿐만 아니라 서민의 소박한 표정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민속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두 돌 장승은 남쪽에는 남자를 상징라는 2.4m의 방어대장군의 모습이, 그리고 북쪽에는 여자를 상징하는 2.1m의 진서대장군의 모습이다.
그리고 모두 수염이 있고 벙거지를 썼는데 남장승인 방어대장군은 귀가 없다.

서림공원이다.
자료를 보면 
느티나무, 밤나무 등으로 숲을 이루어 마을에서는 선두숲이란 명칭으로 관리하여 왔는데, 
병해로 한두 그루씩 고사되어 현재 이 숲에는 서어나무와  88서울올림픽을 맞아 남원군에서 올림픽숲 조성사업으로 심은 느티나무로 조성했다고 한다.
주변에는 서림정과 석장승, 그리고 충혼탑 등이 있으며  
현재 서림숲은 여원치에서 팔랑치로 부는 바람의 통로가 되어 운봉읍에서 가장 지세가 허한 곳이라는 설명이다.
하여, 석장승과 짐대가 숲과 함께 비보 및 액막이, 그리고 방제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스템프를 찍는곳이다.
북한 출신이면서 간호학교를 나온 박말순여사님 기증했다는 왕벗꽃 나무로 채워진 람천 뚝방길.....
벗꽃이 피는 4월달에는 재법 운치있는길이 될것 같다는 생각이다.
가즈아~~~~~~~

진수형님 스템프북을 가지고 오질 않았다.

박말순여사님 기증했다는 왕벗꽃 나무의 안내문

지리산 둘레길은 람천을 따라 방천길로 이어진다.
뚝방길을 따라 동편제마을까지 가야 된다

금계꽃을 뒷쪽에서 카메라에 잡았다.
붉은 기운이  감돈다.

벗나무의 열매인 버찌가 한창 익었다.
그러니 그냥갈리가 있나
나무마다 달라 붙는다.
약간은 쓴맛이지만 나름 맛이 괜찮다.
손은 온통 검붉은 무늬로 얼룩지고 입주변은 서로가 서로를 웃게만든다.
이 또한 살아가는데 즐거움인것을....
인생 머 있어,~~

람천...........
운봉, 인월을 지나는 하천은 예전엔 광천이라 불렀다고 한다.
지리산 달궁, 뱀사골을 흘러나온 만수천과 산내에서 합수한 람천은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에서 백무동, 음정에서 흘러나온 물과 합수하며, 이름을 임천이라 한다고한다.
그리고 임천은, 칠선과 국골, 허공다리골의 물을 의탄에서 만나 용유담으로 흘러가면서  임천은 다시 이름을 엄천으로, 그리고 생초에서 남강 본류와 만나, 낙동강으로 합류 된다.

지리산 둘레길은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안내문이 다리 입구에 붙혀 있다.
지리산 둘레길 장승만으로도 충분할것 같은데..
이런 수고로움까지.....

뚝방길 풀깍는 공공근로 작업이 한창이다.
예초기 5대의 엔진소리가 얼마나 큰지 처음에는 헬기소린줄 알았다.

무슨 사고가 났나하고...

동편제 마을이다.
자료를 보면 
동편제마을은 지리산 둘레길 구간으로 연중 관광객이 방문하는 지역이며, 
조선건국의 단초를 만든 황산대첩비지와 동편제 판소리를 접할 수 있는 역사와 문화를 겸비한 농촌관광의 최적지라는 마을 소개다.
인위적으로 조성한  분위기이다.
동편제의 가왕이라 일컫는 송흥록과 송만갑 선생의 출생지가 비젼마을은 다리를 건너야 한다.

황산대첩비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고려 우왕6년에 이곳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선조 10년 왕명을 받아 이곳에서 황산대첩비를 건립하였다.

어휘각, 
조선 태조 이성계 장군이 황산대첩이 자기 혼자만의 공이라기보다는 여러 사람의 공으로 큰 승리를 거두었다는 성지를 석벽에 새긴 유적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뚜렷하였던 그 성적이 일제의 한민족 문화말살 정책에 따라 본 비전을 폭파하고 철정으로 쪼아버려 현재 그 전영만이 남아 있는 것을 1973년 어휘각을 건립하여 보호하고 있다.

황산대첩비, 
안내문을  보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고려우왕6년(1380)에 이곳ㅅ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선조 10년 왕명으로 이곳에 황산대첩비를 건립하였다.
현종 8년 (1667)비각을 새운뒤 고종 19년(1882)에 다시 고쳐 지었으며 이때 어휘각을 창건하였다.
그러니 일제강정기 떼 일본인들은 비문을 쪼아 대첩비를 파괴하였다. 
1957년 에 비문을 다시 새겨 본래의 좌대에 세우고, 1973년에는 보호각을 세웠다.

황산대첩 사적비
이비는 고종 19년(1882)운봉현감 이두현이 세웠던 화수산비각비를 1958년 중건한비이다.
일제강정기 떼 황산대첩비와 비갇등이 함께 파괴되었다.
비문에는 황산대첩 전황과 비각건립 취지가 기록되어 있다

파비각, 
고려말 이성계가 왜구와 싸워 대승을 거둔 전투를 기념하기 위하여 조선 선조 때 세웠던 비석이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는 비문을 쪼고 비신을 파괴하였다. 
1977년에 비각을 건립하고 파괴된 비석 조각들을 모아 안치하였다.

비전마을,
유래를  보면 고려우왕6년 (1380) 태조 이성계의 황선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조선 선조10년(1577) 운봉 현감 박광옥이 세운 대첩비는 일제시대 일본은 비를  파괴 하였고 현존의 비감과 비석은8.15 광복후 1959년 10월 27일 다시 재건한것이다.
아울러 동편제의 가왕이라 일컫는 송홍록과 송만갑선생의 출생지가 비전마을이고 명창 박초월이 성장한곳이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비전마을의 시작은 황산대첩비가 세워지고 이 비각을 관리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한다. 
하여  비 앞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이름을 비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가왕 송흥록 국창 박초월 생가
잠시 둘러보기로 한다.

가왕 송흥록 국창 박초월 이 살았던 집으로 10가구 주민을이주시키고1000년 7월 28일 복원 했다고한다.
송홍록(1780년경~1863년경)은 조선 정조 초기 권삼득의 고수, 송첨지의 아들로 태워나 12세에 백운산 월광선사에게 공부하였고 철종10면(1859)정 3품 통정대부 벼슬에 제수된 조선말기 순조,현종.철종때 걸친 명창으로 계면조,진양조의 완성
메나리조 도입과 모든가시를 집대성하여 판소리의 중시조라 불리며 진양조의  완성 메나리조 춘향가의 옥중가중에서도 귀곡성이 장기이며 
제자 박만순과 동생광록  광록의 아들우룡, 우룡의 아들 만갑으로 이어지는 송문일가의 소리을 이루었다.

박초월(1916~1983)은 12세에 김정문에게 흥부가를 송만갑 지도로 춘향가, 심청가,수궁가를 전수하였고 1961년 한국국악협회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과 한국국악예술학교를 건립 후진 양성 하였으며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수궁가 보유자로  지정받았다고 한다.
1983년 숙환으로 사망하여 경기 양주에 안치 되었다가 제자와 국악계의 성원으로 2000년 8월 운종 가산리로 이장하였다는 안내문이다.

비전마을앞 벗꽃길

원명대선사의 부도탑인 화수리 부층탑을 지나 화수교를 깃점으로 인월과 운봉으로 나눠 지는데 지리산 둘레길은 인월로  곧장  가질 않고 화수교를 건너  다시 운봉쪽으로 들어 간다.
남원뜰 노인복지회관 입간판이 잇는곳에서 리조트  방향으로 들어 간다.
그리고 폐업한지  오래되어보이는 GNKC리조트라 하는데 옛날지도에는 지리산 대덕 리조트로 나온다.
이곳에서 부터 임도길로 들어 선다.

옥게호이다.
가뭄은 아닌데 농삿철이라 물을 빼어버린것인지 아니면 이달밤루터 시작될 여름 장매때문에 호수를 비운것인지몰라도 제법 넓은 호수이다.
22m까지 담았던 그런 호수인 모양인지 물담은 흔적이 선명하다.

오른쪽 지리산 산양삼을 제배하는곳이라는 입간판이 있듯이 문은 굳게 잠겨 있다.
지리산 둘레길은  왼쪽 임도로 이어진다.

산오디가 주렁주렁 열렸으니 그냥갈수가 있나
나무를 휘어서 하나둘 따서  입에 넣은데 어~~ 맛이 괜찮네...
그러니 손은 검붉은색으로 변하고 당분이 많아서인지 손이 달라 붙는다.
한참이나 따 먹었다.

흥부골 자연휴양림이다.
지리산둘레길 2구간 끝무렵에 있으며 덕두봉(1,150m) 아래 있으며  숙박시설로 숲속의 집 10개 동과 야영지 18개가 있다는 자료다.

위치가 좋다라는곳은 자연휴양림이 자리하고 있다.

지리산 둘레길 의 한상가에서 심겨져있는 꽃들을 감상하고 있다.

지리산 둘레길은 우천시 하천범람을  제외하고는 오른쪽 입간판쪽으로 연결 된다.

저쪽 건너편은 전원주택지를 조상한건지 몰라도 무언가를  산어 두었다.
그리고 이곳은 쪽파도 비닐을  덮어 심는지.....

인월

달오름마을 벽화

달오름마을이다.


마을 대부분이 민박을  겸하고 있으며 마을 안쪽 골목마다 벽화를 그려놓았다.
회색일변일듯한 골목길에 새다른 그림으로 잠시나마 즐거움을 맛볼수 있는 그런 분위기인것 만큼 사실이다.
달오름마을의 유래를 보면 
달오름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인월리에 속한 지역이었는데 인월과 구인월이 발달하면서 두 마을 사이에 몇 집이 모여 살게 되었고, 
조선시대末(1800년경) 부농인 박씨가 이주하여 살면서 새로운 마을 형태를 이루게 되면서 새동네라 하였다가 마을의 모양이 반월형이라 월평이라 불렀다는 설과 마을 터(址)가 동쪽을 향하고 있어 달이 뜨면 정면으로 달빛을 받는다하여 월평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2003년 월평마을이 농촌테마마을로 지정되면서 달과지리산의 청정한 기(氣)가 함께 올라가는 곳이란 뜻의 달오름마을로 불리어 오다가 2010년 7월 15일월평마을을 달오름마을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달오름 마을은 고려 말 황산 대첩 때, 이성계가 왜군 아지발도를 죽이기 위해 어두운 그믐밤에 밝은 달이 솟게 해달라고 빌어 밝은 보름달이 나와 기적적으로 이겼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달을 끌어올리다란 뜻의 인월에 있는 마을이라한다.
터가 동쪽을 향하고 있어 달이 뜨면 정면으로 달빛을 받아 달 오른 모습이 절경인 달의 기운이 가득 찬 마을이라고 한다.는 설도 있다.

버스가 세워져  있는 구 인월교.....
제2구간의 마지막이자 제3구간이시작되는 깃점이다.

9시 시작한 발걸음은 3시간 조금 더 걸렸다.
동편제 비전마을에서 그리고 흥부골자연휴양림에서 쉬었던 시간이 제법 길었나 싶지만 그보다 걷는 내내 버찌, 오디을 따먹느라 약간은 지제된건 말고  그런대로 빨리 왔다.
이어 오후 일정에 따라 휴천면 지리산 황금나무집으로 체리 체험을 하러 출발한다.
네비상으로 30분여 거리인 지리산 황금나무집.....
1인당 20,000원입장료를 내고  들어 가면 500g정도의 부산물을 가지고나올수 있으며 약 1시간 가량 무제한 따먹을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다.
요즘들어 수확하는 인건비상승과 함께 직판하기도 만만한 그런 차원에서 얼마간의 비용을 지불하고 체험장을 운영하는 농장이 늘어나고 있는게 사실이다. 
가격 면에서는 각농장마다는 약간의 차이는 있을수 있지만 체리연구가인 하진수형님께서 적극 추천하는 체리 체험 농가라 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