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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산행기

200929 독경산(아래삼승령-학산봉-저시재-독경산-창수령-울치재)

by 명산 김승곤 2020. 9. 30.

독경산/824m (추억의 낙동정맥 )

 

1.산행구간 : 아래삼승령-학산봉-저시재-독경산-창수령-울치재
2.산행일자 : 2020. 9.29(화요일)
3.산행거리 : 16.37km
4.산행동무 : 하진수님과 지인

 

◎ 울산출발(05:00)
◎ 아랫삼승령/식사(07:10~07:50)
◎ x688m/화산봉(08:00)
◎ x713m(08:35)
◎ 쉰섬재(08:45)
◎ x705.4m(08:57)
◎ 저시재(09:05)
◎ x703m(09:50)
◎ 지경/670m(11:14)
◎ 임도(11:50)
◎ 독경산(12:40~13:30)
◎ 창수령/자라목이(13:50)
◎ x687m(14:18)
◎ 울치재(15:50)
◎ 양구마을(16:10)


낙동강의 수계를 형성하는 낙동정맥
그 줄기는 백두산에서 남으로 뻗어내려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백두 대간이 피재에 이르러 대간은 서쪽 함백산(1573m)으로 맥을 잇고, 또 한줄기는 동남쪽으로 갈라져 백병산(1259m)으로 맥을 이어 나가는데 바로 이 줄기가 다대포 즉 몰운대 낙동강 하구까지 이어지는 낙동정맥 이라 한다.
그리고 도상거리만 해도 400여km가 넘는 거리다.
하지만 오르내리는 고도를 감안할때 실거리는 약 700여km가 넘는다는 사실이다.
이에 백두대간을 마무리한 지인이신 하진수 형님이 지난 3월부터 낙동정맥을 시작했다.
주변에 수소문을 하여 자형부터 지인 포함 4시람과 함께 매달 두번씩 자차를 이용 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작한지 5개월여
날씨와 주변 상황 그리고 코로나가 발목을 잡는사이 점점 시들어 가는 분위기다.
그래도 겨울날씨를 감안하여 남진할때까지는 해야겠다는 의지가 그나마 아래삼승령까지 남하를 했다
그런데 같이 가자는 전갈이다.
두분이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불참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D-day를 9월 29일로 잡았다.

9월 29일 05시...
언양 고속도로 톨게이트 회차로에서 진수형님을 비롯 일행과 조우 한다.
경주까지 고속도로 그리고 경주를 지나 7번국도를 따라 포항 우회 그리고 영덕우회,
송천교차로에서 창수 영해로인 918번 도로를 따라 창수면에서 69번도로인 백청리 삼계리 방면이다.
그리고
창면 인천마을를 지나 보림마을로 들어 가는 길목에서 산판 도로로 올라선다.
즉 임도길이다.
산판 도로 즉 임도길에 대한 염려를 했지만
그래도 다행인건 지난주 이쪽으로 내려와 봤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울퉁불퉁 지그재그 그런 산판 도로를 따라 30여분...
아래삼승령에 도착한다.

 

07시 10분이다.
출발한지 2시간 10분 걸렸다.

아래삼승령이다.
싸늘한 기온이 온몸을 감싸 돈다.
벌써 산중 날씨가 많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지난주 검마산 자연휴양림에서 이곳까지 가진 10시간 걸렸다며 무용담이 펼쳐지는 가운데 아침 식사가 준비중이다.
멧돼지 찌개를 준비 하셨다는 진수형님 지인이다.
낙동정맥 구간 구간을 준비해준 넘이 어떤넘인지 보고 시펐다나 어쨌다나 그렇게 수인사로 대신한다.
그리고 약 30여분간의 식사와 함께 출발한다.

낙동정맥도 식후경이라..........하여 아침 식사중

남는자와 떠나는자는 언제나 손을 흔들며 이별을 아쉬워 한다.
남편 산행길에 기꺼이 동참 즉 날머리 운전을 해주는 맡아주는 모습에 우리는 그랬다.
열녀났다 열녀 났어...
그리고 시댁에 홍살문이라도 세워야 하는거 아닌가 라고.... ㅎㅎ

서방니~~~~~

쉼터였는데.....

출발은 늘 상큼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빠른 걸음으로..
그런데 이게 오히려 독이 될수도 있다는것을 알고는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늘 그게 뭔지도 모르고 서두르다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2004년도였지 싶다.
지료를 보니 2004년도가 맞네..
1월달...
추운 겨울날 우리는 이곳에 왔었지
그때만 해도 gps는 커녕 겨우 인터넷에서 돌고도는 선답자 산행기
그리고 25000분의1 지도를 구입해서 몇일간 지도정치를 해서 산행에 들어 오던날 ...
컴파스는 늘 소지품의 하나였지만 능선을 이어가는 산길에 그리고 알바에 늘 노심 초사했던 그시절이 갑자기 생각난다.
요즘이야 많고 많은 선답자의 산행 gps를 휴대폰에 담아 그길을 따르면 알바같은거 염려할바가 아니다 싶다.
그리고 더구더나 여느 무당집처름 빼꼼히 결려 있는 각 산악회 시그널이 갈길을 인도 하고 있으니 참 좋은 세상이다 싶다.

학산봉이다.
첨부터 가파른 길이지만 늘 그릇듯 시작은 힘이 넘치게 마련이다.
출발한지 10여분만에 올라선다.
하기사 출발이 x590m인가 그랬을끼다
지도상의 x688m인데 언제부터 학산봉인지..
알수가 없다.
그래도 준.희 선배님의 조그만한 팻말에 학산봉이라는걸 알게 해 준다.

투구꽃이 지천으로 늘려 있다.
투구모양이라 투구꽃이라 했겠다 싶다.
그리고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숙근성 여러해살이풀이다.
아시아와 유럽이 원산지라는데 맹독성 물질이 함유되어 있는 유독 식물이며 한방에서는 뿌리를 약으로 쓴다고 한다.
우리야 그져 보는것만으로도 만족해야겠다 싶다.

x713m 이다.
오늘산행길에 최고봉우리다.
주변 조망은 썩 없지만 그래도 왼쪽 나무가지로 나타나는 보림마을이 이따금 사야에 들어 온다.
잠시 쉬어 간다.

쉰섬재다.
거진 해발이 x650m다.
쉰섬재는 쉰+섬+재 라고 하는데 50을 뜻하는 순우리말인 쉰과 곡식을 세는 단위 섬과 고개를 뜻하는 재라는 이야기다.
즉 고개 주위에 조농사를 쉰 섬 정도 지을 수 있는 밭이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하는데 해발 650고지에 그럴만한공간이 있는지 아무리 둘러 보아도 없다.
왼쪽은 급경사에 깍아질듯한 절벽이고...
오른쪽은 비탈진 경사에 나무가 없다면 옥수수정도면 몰라도....

철도 모르는넘.........

x705m를 내려선다.
참나무 서너그루가 정상을 차지 하고 있어 이렇다할 이야기거리가 없다는것도 이야기 거리다.
그러니 자동 발걸음은 내려선다.

저시재다.
잡목이 우거진 고갯마루....
해발 x645m..
반쯤 찢어진 이정표가 아쉬움을 나타 낸다.
누군가의 노력이 헛되이 보는것 같아 꼭 저렇게 했어야 할까 싶다.

아직까진...........씩씩한(?)발걸음.........

꽈리 라는 꽃이다.
자료를 보면 가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와 주변국이 원산지라고 하는데 마을의 빈터와 산비탈, 풀밭에 흔히 자란다고 한다.
꽃은 6~7월에 피는데 꽃이 진 뒤 꽃받침이 달걀모양으로 되어 열매를 완전히 둘러싼다.
그리고 열매만을 꽈리라 부르기도 하는데, 예전에는 아이들이 열매를 놀잇감으로 가지고 놀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전초와 뿌리, 열매 모두 식용과 약용으로 사용되는데 청열·이뇨·해독의 효능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꽈리라는 이름의 소녀가 죽은 후 무덤에서 피어나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화도 전해진다.

투구꽃이다.
인터넷에 돌고도는 이야기를 주워 왔다.
설에 의하면
옛날에 응석받이 방주라는 아이가 있었다고 한다.
어느날 전쟁이 나면서 모든 사람들이 전쟁터로 떠나게 되었는데 방주의 아버지도 전쟁터에서 큰 부상을 입게 되어 칼과 활을 가지고 돌아왔지만 곧 죽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방주도 아버지의 죽음을 위해 아버지의 투구를 받아 전쟁터로 나아가려고 했지만 투구가 어찌된지 혼자 바닥을 굴러서 집 앞의 산 깊숙한 곳으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방주는
아버지가 자신을 믿지 못하여서 투구가 사라진것이라고 생각들어 매일 활쏘기와 말타기 훈련을 하는중에 어느날 산에서 이상한 풀을 보는데 주먹같이 노란 투구모양의 꽃이 피었다고 한다.
이때 방주는 아버지의 화신이라고 생각을 하여 그 꽃앞에서 열심히 훈련을 하였다고 하는데 그때마다 꽃은 황금처럼 빛났다고 한다.
이윽고
연습이 다 되었다고 생각이 된 방주는 이제 싸움터에 나간다고 이야기를 하자 꽃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으며, 이를 본 방주는 더욱더 열심히 연습을 하게 되고
마침내 연습 도중 꽃이 떨어지고 황금색 투구로 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본 방주는 싸움터에서 군사들에게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잡목이 발길을 잡는다.
더구더나 지난 태풍(마이삭,하이선)으로 뿌리째 뽑혀버린 나무들 그리고 꺽어진 나무들이 산갈마져 막아 버렸으니 우회하느라 그리고 넘느라 평소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이다.

취나물꽃이다.
특유의 향과 쌉사름한 맛이 특징인 취나물은 국내에 60여 종이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그 중 참취, 개미취, 각시취, 미역취, 곰취 등 24종이 식용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이중 수확량이 가장 많으며,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것이 참취다.
특히 칼슘, 철분, 비타민 A 등이 풍부해 건강식품으로서도 가치가 높다.
참취의 잎과 줄기는 맛과 향이 독특해 예로부터 생채, 묵나물 등으로 이용되어 왔으며 한약재로는 진통, 현기증, 해독, 장염 등의 치료제로 사용되기도 한다.

지난 태풍(마이삭,하이선)으로 뿌리째 뽑혀버린 나무들이다.
뿌러지고 뽑히고 처참한 광경이다.
이런 광경은 내생전에 처음이지 싶다.
참 자연의 힘이란게...........

지도상의 옷재다.
까마득한 고갯마루에 재라는 표현이 맞을런지 의문스럽다.
고갯마루 이긴 하지만 그런 표현이 어울리지 않은 옷재.......
지름길이어서 사람들이 많이 넘나들었다고 한다.
옷재는 내륙인 영양 쪽에서 보면 완만한 반면 영덕 쪽에서 보면 까마득하게 높은 고개다.
그리고 옷재의 옛 지도에 보면 까마귀 오(烏) 자에 고개 현(峴) 자를 써서 '오현(烏峴)'이라고 나와 있기도 한곳이다.

산길에 뽑혀진 참나무 한그루가 막았다.
그러니 갈길은 넘어 가느냐 아니면 돌아가느냐 그것이 문제다
그러나 너무 커 넘어갈수는 없고 결국은 뿌리 아래로 돌아갈수밖에 없다.

x703m 급경사길이다.
거진 미끄러질듯한 그런길....
이길이 맞나 싶은 그런 길이다.

지도상 x686.5m 이다.
보림마을의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다.
그러니 모처름 나타난 전망대에서 잠시 선다.
그리고 선김에 쉬었다 가자며 막걸리를 내놓는다.
진수 형님 지인이 작접 손수 담았다는 막걸리도 한잔 하는데 막걸리 원료인 누룩 냄새도 약간나고....
그정성이 대단하다 싶다.

보림마을의 뒷산 산허리길이 아침에 아래삼승령으로 올라왔던 산판도로다.
산허리를 잘라서 만든것도 그렇지만 어찌 저렇게 허리를 잘라 산판도로를 만들 생각을 다 했을까 싶기도 하다.

지도상 x686.5m 에서 짐사 휴식후 내려서는길에 돌복숭아를 만난다.
제법 익은듯 빨간 반점도있고...
하여 술을 담아 놓으면 향이좋다며 진수형님 지인분이 욕심을 낸다.
그러니 지동 한쪽으로 모으니 제법 한봉지다.
나중에 베냥이 제법 무거웠다는 이야기다.

하진수 형님이다.
시작은 용감했지만 결론은 ......
계속 뒤따르다 x686.5m에서 앞장 서는데 시간상 좀 당길까도 싶은데 도저히 따라오질 않는다.
그러다 한장 걸렸다.
제법 불룩히 나온 배를 안고 산을 타니 얼마나 힘들까 싶기도 하고....

지경이라는 이정표다.
지경은 영덕 창수면과 영양의 군경계로 넓은 능선의 봉우리이다
하지만 별 의미 없는 그런곳이다.

임도다.
백청리 망성골와 영양 무창 밤남골을 연결하는 길인데 계절이 계절이라 곳곳 붉은 줄을 쳐 놓았다.
송이버섯 채취 금지라는 현수막과 함께...
그리고 의자 하나와 송이 채취할때쓰는 나무 작대기....
물한모급을 하면서 가는길에 눈크게 뜨보자라며 출발한다.

임도에서 잠시 휴식............쭝

온통 쓰러진 나무다.
특히 전나무는 뿌리가 약한건지 아니면 바람을 많이 타는지 하여튼 죄다 쓰러졌다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 산길을 막아 넘어서는것도 힘들고 돌아가는길도 힘들고....
이를 어쩌란 말인지...

나무의자...........

독경산 정상이다.
아마도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었지 싶다.
거친 산길에 넘어진 나무를 우회 하면서 올라서는 가파른 오르막길
거친 숨은 기본이고 이따금 뚝뚝 떨어지는 땀을 훔쳐 가며서....
그렇게 올라서는 독경산....
먼 옛날 이 산 근처에 있는 절에서 스님들이 경을 읽을 때 그 소리가 온 산에 울려 퍼졌다 하여 독경산이라 불렀다고 한다는데 그냥 우숫개소리지 싶다.
산불 감시 카메라 그리고 여러가지 안테나가 철탑과 함께 세워져 있다.
그리고 반대편에 독경산이라는 코팅지
그리고 주변에 어지러이 걸려 있는 각 산악회 시그널...
무슨 경쟁이라도 벌어 졌는것인지...
...............
식사를 하고 가기로 한다.
약 30여분 동안.....

식사후........

독경산을 내려서면서 건너편애 세워진 출력 발전기의 모습이다.
전국 단일지역으로는 최고라 한다.
그만큼 많이 설치되었다는 이야기다.
결론은 풍차가 돌아가는 소음이 문젠데...

자래목이 즉 창수령으로 내려서는 일행의 모습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목적지인 OK목장까지 너무 빨리 더착하는거 아닌가라며 농도 던져 본다.

창수령이다.
영덕군 창수면과 영양군 영양읍을 연결하는 918번 도로로 생긴 모양이 자라의 목 같다하여 자래목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보다 영영 풍력발전시설로 올라가는 임도 즉 포장길이 더 선명해보인다.
차량도 두대 세워져 있고...
그네 저사람....검은옷 입으신분....
우리들어 송이 채취하러 다니는 사람으로 착각한듯...
좀 캤습니까....?

들머리는 트럭 뒷쪽이다.
입산금지라는 현수막과 함께 줄을 쳐 놓았다.
산끈들 즉 낙동꾼들이라면 으례 갈길인데 저렇게 막아둔다해서 마음이 편할까 싶기도 하다.

따스한 날씨 덕인지
아니면 계절도 모르는 넘인지 꽃을 피워 놓았다.

x640m 올라서는길에 산불기계화 훈련장이라는 간판을 세워 두었다.
영양군에서는 저런 훈련도 하는 모양이라며 지난다.

x687m 를 지나 왼쪽으로 90도 내려서는곳에서 카메라에 담은 풍차의 모습이다.
비록 나무 사이지만 휙휙 소리가 난다.
이곳에서 100여m내려가서 80여m 올라서는 마의 구간이다.
그만큼 힘들다는 이야기다.

양구리 산성지의 모습이다.
나란이 돌로쌓은듯한 모습의 산성터....
자료를 찾아보지만 별 내용이 없다.
어쩌다 이곳에 산성처를 만든것인지 무엇때문에 만든것인지.......

x682.8m다.
베냥을 내려다 놓고 한컷 담는다.
일행들이라봤지 두분인데 당쵀 올라올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 거려 보지만 별로 볼것도 재미를 붙일것도없다.
하여내려선다.
무언가를 찾아서....

 

안부에 내려서는데.....
오른쪽 숲너너로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온통 아름드리 나무들이 넘어져 있다.
이곳이 이렇게 큰나무들을 뿌러떠릴만큼 바람이 센간거 싶기도 하고...
물론 태풍의 영향이긴 하지만...
하여간 많이 넘어졌다고 보면 될것 같다.
그런데
그중에서 다래나무가 감은 소나무도 중간에 부러져 넘어 졌는데 중강 중간 다래가 메달려 있다.
하나를 따서 입에 넣어보는데 그 단맞이란...
여지껏 산에 다니면서 이렇게 달고 맛잇는 다래는 처음이라 하나둘 따 모으는데 어래 양이 제법 된다.
그렇게 한 30분 넘게 다래를 채취하는데 일행이 안부로 내려선다.
그리고는 진수형님이 더이상 힘이들어 산행할수 없다, 넘 힘들어 못간다. 식은땀이 다난다,
하여 진수 ㅎ형님 지인은 울치재까지라도 가자
그리고 하산 하자라고 해도 막무가내 ......
이곳에서 하산 하겠다며 차를 불러 놓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주소를 불러주는 진수형님
어떻게 찍었는지 엉뚱한 주소다.
하여간 그렇게 하산하고 진수형님 지인분과 울치재까지 진행하기로한다.
목적지인 울치재에 도착해서 지번을 찍어 줘야 곧장 올수 있을것 빠른걸음으로 진행을 한다.
약 1.5km구간 ....
거진 날다...

15시 50분...........
울치재다.
영덕군 창수리와 영양읍 양구리로 이어지는 임도로 비교적 깨끗하게 정비 되어 있다.
그리고 울치재에 관한 사연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울며 넘었다는 울치가 있지만
그보다
옛날에는 석양(夕陽)에 이 재를 넘으면 반드시 그 나그네는 참상을 입었다해서 울고 넘는다는 뜻으로 울티재(泣嶺)라 했다 한다.
하여 저녁만 되면 이 재 넘어 가기를 꺼려했다 한다.
어느날 원님이 오다가 길에서 풀벌레를 보고「저 벌레가 무슨 벌레냐?」하고 물었다.
「범아제비입니다.」하고 하인이 대답하였다.
조금 더 오다가 호랑이(범)을 만났다.
겁이 났으나 정신을 차리고 「내가 오다가 자네 백부(伯父·阮丈)를 만났으니 길을 비켜라」하니 범(호랑이)이 길을 비켜주어 위기를 모면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리고 또하나
울티재는 영해 고을의 교통의 요충지로 영해 고을을 오고가는 대소의 관리들이 처음 이 고개를 넘으면 반드시 죽음을 당하곤 하였다는데....
어느날 간이 큰 손순효(孫舜孝)가 경상도 감사가 되어 울티재에 내려와 주위를 살핀 다음 오래된 나무 한 그루를 베고 글을 쓰기를 다음과 같이 하였다고 하는데.

汝揖華山呼萬歲 我將淪命慰群氓
너희들이 공손히 화산곡(華山曲)을 만세토록 부른다면 내 장차 임금의 명을 받아 너희들을 위로하리라.
個中輕重誰能會 白日昭然照兩情
개개일들의 가볍고 무거움을 누가 능히 헤아리랴 밝게 비추는 햇님이 우리 양 충정을 비추어 주지 않은가

그러자 바로 괴이한 일들이 없어지고 이후로는 흉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울티재는 괴이한 일들이 없어졌다고 하여 파괴현(破怪峴)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기록에 의하면 조선 태조 2년(1393) 5월에 전조 고려 왕씨들의 후예들을 영해로 옮겨 살도록 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의 후예들이 점차 장성하면서 조선 왕조에 대한 반감으로 범아제비 혹은 산적 등으로 변장하여 새왕조의 관리들을 살해하여 선조들의 원한을 갚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왕조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오래 방치하면 구왕조의 부흥운동이 일어 날까봐 병조좌랑 등을 역임한 손순효(1427∼1497)를 경상도 관찰사(감사)로 삼아 이를 토벌하게 하였는데, 이 때가 성종 16년(1485)이었다.

양구마을

2~30분이면 오는 길를 1시간 넘게 걸렸다.

풍력발전단지에서 내려오다 네비 시키는대로했다고 하는데 엉뚱한곳을 가르켜 주더라며 시키는대로 했다는데.....

길가에 앉아 막걸리 1통을 비웠다.

둘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