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산행기

240615 경주남산(고위봉)

by 명산 김승곤 2024. 6. 15.

경주 남산 /고위봉(494m)


1.산행구간 : 용장주차장-이무기능선-고위산-용장사지-용장주차장
2.산행일자 : 2024. 06.15(토요일)
3.산행거리 : 9.06km
4.산행동무 : 아내



◎ 용장 주차장(09:50)
◎ 용장골 입구(10:00)
◎ 고위산/494m(12:00)
◎ 백운재 (12:10)
◎ 이영재 (13:30)
◎ 금호봉/용장사지 갈림길(14:00)
◎ 용장사 3층석탑(14:10)
◎ 설잠교(14:30)
◎ 용장 주차장(15:00)

어제
금요일..............
장미 인수관계로 진해 형님과 점심 식사후 난 일터로 아내는 볼일로....
그리고 퇴근길에 신복 고속도로 입구에서 아내를 픽업
집으로 오는길에 아내는 내일 뭐하지....
딱히 할일이 없는것 또한 사실....
5일동안 사실 피곤 했다.
뭐 그렇다고 대단한일도 아닌것이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하루쯤은 그냥 쉬고 싶다는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쉬자할수도 없는게 오후되면 후회하게 만드니 뭐라도 하루를 떼워야 한다.
이어 아내는 운동좀 하고 쉬자며  선수를 치고 나온다.
뒷산 조금 걷자는 이야기인거 다안다.

토요일.....
아침에 경주 남산 다녀 오자 되었다.
목적없이 뒤산 걷는것 보다 그래도 목표가 있는게 헐씬 좋을것 같아 그리 결정 했다.
커피도 내리고 
점심대용으로 빵도 굽고....
그리고 
출발한다.

240615 경주남산.gpx
0.15MB

경주 용장리 주차장이다.
토,일요일만 받는 주차요금................
2000원이다
주차후 차에서 내리는데 따끈따끈한 햇살이 반긴다.
덥다
6월달인데 벌써 이렇게 더워서야 올여른 어떻게 견딜까가 걱정이다.
출발이다.

금오신화에 안내를 해놓았다.
한국 문학 사상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라는 걸작을 창작해서 이 땅에 불후의 금자탑을 세운 김시습
강릉 김씨지만 경주를 고향처럼 생각하며 금오산과 경주를 오매불망 사랑했던 매월당 김시습
31세 때 용장사에 금오산실을 짓고, 
37세까지 7년 동안을 경주에서 시를 짓고 소설을 쓰며 시대와의 불화를 달랜 조선시대 지식인이자 방랑 시인의 선구자 설잠 김시습의 관한 내용이다.

용장골 들어 가는 출렁다리다.
길이 18m의 용장골 출렁다리 
2016년 설치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때 영남권을 휩쓴 태풍 차바 이후이지 싶다.
그때 울산에도 많은 희생을 겪곤 했었다.

한줄기 땀과 함께 전망대에 올라서는데 x336.6m 아래다.
힘들다는아내
배고픔을 느낀다고...
그러니 방법 없다
쉬어야지
커피도 한잔 하고...
빵등 약간의 간식으로  입맛을 느끼며 올라서는 이무기 능선길.
높고 낮음을 떠나서 암릉과 육산의 산길
주변이 이런길이 있다는게 참 좋은일이다.

고위산이다.
494m라는.....
식사는 가다 좋은곳이 있으면 하자 그리되었다.
정상석을 카메라에 담고는 곧장 내려선다.

백운재이다.
앞서가던 산꾼들이 칠불암 다녀오자말자를 두고 있다.
가지 않을거 뻔한 일인걸 ....

이영재

통일전 주차장으로, 포석장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임도길이다.

용장사지 능선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금오산을다녀와도 될것 같지만 오늘같이 더운날 .....
가지 않는것도 아내를 도우는 길이다.

용장계 탑상곡제1사지 탑부재라고 한다.
디딤돌 4매를 조립하여 받침돌을 만들고 그위에 사각형몸돌을 올려놓았다.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2019년 주변을 정비 하였다는 설명이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이다.
보물 제186호 삼층석탑이라는데 
용장사지 삼층석탑은 상륜부가 없고 지붕돌 일부가 깨져 완벽한 아름다움이 조금은 사라진 듯하지만 남산이라는 거대한 기단 위에 세워진 하늘 아래 첫 번째 탑이다.
2단 기단위의 3층석탑 높이는 4.4m라는 삼충석탑..
자연 암반을 다듬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산전체를 기단으로 삼아 만들었다는.....
통일신라 후기작이라 한다.
단지 윗부분이 없어진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다.

마애여래좌상이다.
자연 암벽에 조각된 마애여래좌상은 단정한 이목구비가 돋보인다는 설명이다.
삼륜대좌불의 북쪽 바위의 벽면에는 마애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약한 돋을새김이어서 입체감이 느껴진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에 긴귀, 꾹 다문 입술 등으로 인해 조금은 근엄해 보인다.
양 어깨에 걸친 가사에는 평행선으로 이루어진 잔잔한 무늬가 밀집되어 있다.
또 옷이 왼 어깨에서 오른쪽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이다.
손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부분에 놓여 있다.
불상은 연꽃이 새겨진 대좌 위에 양 발을 무릎 위로 올린 자세로 앉아 있으며, 머리광배와 몸광배는 2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삼륜대좌불(보물 제187호)이다.
삼륜대좌불은 원형의 대좌가 세 개 있고 그 위에 부처님이 앉아 있어 그런 이름이 붙혀졌다고 한다.
공식명칭은 용장사곡 석불좌상이다.
둥근 형태의 대좌, 이것은 초기 불교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양식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유가종(瑜伽宗)의 조사 스님인 대현(大賢)이 8세기 전반 남산 용장사에 살았다.
당시 절에는 미륵장육상이 있었다.
대현스님이 이 장육상을 돌면 삼륜대좌 위에 앉은 부처님도 스님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고 한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은 대현스님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시에 담았다.


남산의 불상을 도니 불상도 따라 얼굴 돌려           遶佛南山像逐旋
청구(대현스님)의 불교가 다시 중천에 떠올랐네.   靑丘佛日再中懸
궁중 우물물 솟구치게 한 것이                               解敎宮井淸波湧
향로 한 줄기 연기에서 시작될 줄 누가 알리.         誰識金爐一炷烟

용장사지라는곳이다.
신라경덕왕때 고승 대현과 조선시대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느시대에  페사가 되었는지 알수 없는데,
조선 초기 설잠스님이(김시습) 이곳에 머물며 금오신화를 썼다고 하니 아마도 조선 중기까지 있었다는 기록이다.

 

돌확이다.
돌확은 곡식이나 양념을 가는 데 쓰는 연장인데 조금은 좁다는 그런 느낌이다.

설잠교이다.
신라시대에 용장사가 있었다 하여 용장골이라 불러 왔다는 이곳...
김사습이 머물며 금오산실을 짓고 유금오록에 155수의 시를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은곳이며 속세를 떠나 산승으로 있으면서 단종에 대한 변함없는 충절로 북향화를 심었던 곳이라 하여 이곳에 다리를 놓아 매월당 김시습을 기렸다하여 다리이름을 김시습의 법명을 따라 설잠교라 하였다고 한다.
용장골 입구의 출렁다리이다.
2016년 설치 되었다고 한다.

용장골 계곡

날머리

용장골 주차장이다.
주차장까지 점령한 꽃집......
무슨 이유일까 싶다.

주차장을 빠져 나와 소호 밭에 물을 주고 파를 한아름 빼 나온다. 
그리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물을 많이도 주었는데.....
저녁에 번개 동반한 비까지 흠뻑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