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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산행기

220918 경주남산 /금오봉(통일전주차장-국사골-남산부석-금오산-칠불암-통일전주차장)

by 명산 김승곤 2022. 9. 18.

경주 금오산(468m)


1.산행구간 : 통일전주차장-국사골-남산부석-금오산-칠불암-통일전주차장
2.산행일자 : 2022. 9. 18(일요일)
3.산행거리 : 8.3km
4.산행참가자 :아내, 처제


◎ 통일전 주차장 (10:50)
◎ 동남산 탐방안내소(11:05)
◎ 굴바위(11:20)
◎ 남산 부석(12:20)
◎ 팔각정터(12:30)
◎ 금오산/468m (14:20)
◎ 이영재(14:50)
◎ 칠불암(15:35)
◎ 남산사(16:30)
◎ 통일전 (16:50)


모처름 휴일이다.
둘째 처제도 산에 간다고 하고....
하여
어디던지 산엘 가자 되었는데 1000고지 이상은 가스로 가득하다.
이런날 올라가봐야 볼건 없고 종일 가스속에 헤메다 와야하는 그런 불상사를 만들기 싫어 경주 무장산으로 생각이 바꿨는데 지난 태풍으로 인하여 다리가 끊기고 등산로가 파혜쳐졌다는 소식에
경주 남산으로 바뀐다.

08시 잡앞 횟집에 전어를 주문 했었다.
1kg에 40,000원.....
추석이후 아직 전어값은 상승세이다.
그리고 09시 30분 출발이다.
만나기로 한 농협 원예마트 주차장이다.
처제차량을 주차하고 우리차로 울산을 출발 목적지인 통일전 앞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10시 30분이다.

 

220918 금오봉.gpx
0.16MB

통일전 주차장이다.
삼국을 통일하는 데에 큰 공을 세운 신라의 태종 무열왕 김춘추와 김유신 장군, 
그리고 삼국 통일의 대업을 완수한 문무왕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서출지다.
신라 소지왕 10년(488)일이다.
왕이 남산 기슭에 있던 천천정이라는 정자로 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사람의 말로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쫓아 가보라하니 괴이하게 여겨 신하를 시켜 따라 가보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신하는 이 못에 와서 두 마리의 돼지가 싸우는 것에 정신이 팔려 까마귀가 간 곳을 잃어버리고 헤매던 중 못 가운데서 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건네줘 왕에게 그것을 올렸다고 한다.
이에 왕은 봉투 속에 있는 내용에 따라 궁에 돌아와 화살로 거문고집을 쏘게 하니, 왕실에서 향을 올리던 중과 궁주가 흉계를 꾸미고 있다가 죽음을 당했다는 이야기이다.
하여 이 못에서 글이 나와 계략을 막았다 하여 이름을 서출지(書出池)라 하고 정월 보름날은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사지내는 풍속이 생겨났다고 한다.
뭐 믿거나 말거나한 전설이다.
그리고 
조선 현종 5년(1664)에 임적이라는 사람이 못가에 건물을 지어 글을 읽고 경치를 즐겼다고 하는데 소박하면서 우아한 모습으로 남아있는게 특징이다

무량사다.
풍천임씨 집안의 고택이었던 한옥을 절로 바꾸어 1972년부터 조계종의 사찰로 된 곳이며 대웅전 건물은 400년이 더돤 건물이라고 한다

남산마을에서 남산순환로따라 올라선다.
탐방안내소도 지나고....
그리고 국사골로 들어 선다..
지난번 태풍 힌남로로 인해 나뭇잎이 모드 떨어진듯 온통 나무잎과 가지들이다

굴바위다.
내부는 그다지 넓지는 않지만 기도처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주면이 절터로 보이는 흔적이 여기 저기 남아 있는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을 보면 국사곡의 전설을 만나볼수 있는데
신라 35대 경덕왕 때 실제사에 영여스님이 계셨다고 한다.
말없이 묵묵히 수행만하는 스님은 행실과 덕이 높이 대하는 사람을 늘 감동시켰다고 한다.
허여 이 말을 들은 경덕대왕은 대궐 안에서 불공을 드리려고 사자를 보내어 영여스님을 모셔와서 불사를 다 마치고 지팡이를 짚고 절로 돌아가려 할 때 왕은은 사자를 불러 가마로 모셔가게 했다고 한다.
이에 가마를 타고 절로 돌아온 스님은 절 문 앞에 가마를 멈추고 걸어서 절문 안으로 들어갔는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고 한다.
절문 안에 들어선 스님이 깜쪽같이 사라져 버린것이다.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스님
이에 사자들이 돌아와 임금님께 아뢰니, 임금께서도 이상히 생각하여 다시 찾아보게 하였으나 영여스님의 모습은 영영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하여 경덕왕은 높은 덕이 세상에 알려지자 자취를 감추고 사라져 버린 영여스님을 존경하여 국사로 추봉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부터 스님이 계시던 그 절을 국사방(國師房)이라 불렀다 하는데 그 국사방이 있던 곳이 국사골이라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남산 부석이다.
바위가 허공에 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해서 부석이라 불리어 졌다고 한다.
그리고 또 부석은 버선을 거꾸로 세워 놓은 모양같다 해서 버선바위 라고도 한다고 한다.

남산 팔각정터다.
바람을 막아주는 곳에 앉아 준비한 전어회무침으로 출출한 배를 채운다.
개다가 막걸리 한잔까지이다.
그러는 사이 몇몇 산꾼들이 지나 간다

금오산이다.
468m다.
늘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다.
부담 없이 다녀갈수 있는 그런곳이기에 니네 할것 없이 누구나 한번쯤은 다녀갔을 것이다.
남산을 가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다녀간 사람은 없을거다 싶다

신선바위[神仙巖]에는 반가상(半跏像)을 한 보살상이다
보물 제199호다.
높이 190㎝의 절벽의 바위면을 주형의 감실처럼 얕게 판 안에 두광과 신광을 갖추고 반가부좌의 자세로 앉아 있는 마애보살상이다.
머리에는 삼면보관을 쓰고 눈·코·입이 명확하고 부드럽게 조각되었으며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어 표정이 자비롭다는 설명이다.

칠불암이다.
공양하고 가라는 스님의 말투로 보아 비구니승이것 같다.
칠불암은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현재 남산 내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불상을 갖춘 곳이기도 하고 그리고 칠불암이라 부르게 된 것도 마당에 있는 바위에 아미타삼존불(阿彌陀三尊佛)을 비롯하여 사방불(四方佛)이 조각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암자는 1930년대에 세워졌다고 한다.
또 이 암자에는 칠불 외에도 폐탑의 탑재를 모아 올린 3층 석탑 1기와 옥개석으로 보이는 6개의 석재, 여덟 겹의 연꽃이 새겨진 배례석(拜禮石)도 있고....
또한, 이 암자는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가 머물면서 대안(大安)의 가르침을 받았던 도량으로 전하고 있다.
마애불상군은 국보 제312호로 지정되어 있다.

 

통일전 주차장이다.
동서가 친구와 간월재 갔다는데 하산주때 찬석 하겠다는 연락이다.
하여 막냐 동성하 처제도 불러 저녁을 먹기로 하고 무거동 산들 바람집으로 18시 30분 예약 해둔다.
그리고 산들 바람.....
오리고기라고 유명하지만 초정집이기도 한곳이다.
몇번 이용하여 부담없이 먹을수 있는 곳....
그런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