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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산행기

200825 경주남산(용장주차장-용장사지-금호봉-해목령-당간지주-경주 나정)

by 명산 김승곤 2020. 8. 25.

경주 남산 /금호봉(468m)


1.산행구간 : 용장주차장-용장사지-금호봉-해목령-당간지주-경주 나정
2.산행일자 : 2020. 08.25(화요일)
3.산행거리 : 11.7km
4.산행동무 : 아내


◎ 용장 주차장(10:50)
◎ 용장골 입구(11:00)
◎ 설잠교(11:40)
◎ 용장사지(12:00)
◎ 삼륜대좌불/마애여래좌상 (12:05)
◎ 용장사지 삼층석탑(12:15)
◎ 금호봉/468m(12:40)
◎ 상사바위(14:00)
◎ 해목령(14:20)
◎ 샘터(14:30)
◎ 당간지주(15:05)
◎ 경주 나정(15:30)

 

 

느지막하게 출발한다지만 그래도 10시 넘기기가 힘들다.
무슨말이야 하면 어제 천황산 산행후 피곤하다, 힘들다는 아내...
배려해서 오후에나 산에 가볼요량이었는데 마음이 내버려 두질 않는다.
가자
베냥부터 챙긴다.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아서인지 자꾸만 산으로 산으로 가려는것인지 내가봐도 이해가 않된다.
힘든건 마찬가지일터...
그런데
어디로 갈까
이런 저런 고민이다.
생각은 오늘 지산마을 까지 대중교통인 12번 버스를 이용 영축산을 지나 신불산 그리고 등억까지였는데...
아마도 그생각을 접어야 할것 같다는 생각이다.
마눌의 눈치가 무섭다.ㅎㅎ

 

8월 25일..........
목적지는 경주 남산이다.
용장리주차장을 출발해서 용장사지 그리고 금호봉, 당간지주 경주 나정으로 하산하는 그런 길이다.
그리고 버스를 이용해서 돌아오는 그런 계획이다.
집을 출발해서 아마도 30여분 채 걸리지 않는 거리...
도착시간이 11시 조금 못된 시간이다.

200825 경주남산.gpx
0.17MB

용장리 주차장이다.
거진 비디시피한 주차장
주차장을 만들때는 기대에 부푼 생각을 하고 있을터인데 만들고 보니 수요 공급 대비는 영 엉망이 되어버린 주차장...
출입구에 게이트는 만들어 놓았건만 거진 무용지물이다.
아마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을거라 생각드는 가을 쯤에는 어떻게 주차요금을 게산 하려는지 어째튼 돈 벌었다.
2000원 이지만....ㅎㅎ

용장리 마을도로다.
뜨거운 햇살이 도로를 달구고 있다.
바람한점 없는 마을길..
반바지 차림이라 살갖이 따끈 따끈 하다.

용장골 입구의 출렁다리이다.
2016년 설치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따가운 햇살이 얼른 숲속으로 도망가게 만든다.
하지만 숲속이라곤 별바 다를바 없는 무더위다.
그나마 어제는 바람도 불고 그러더만은 오늘은 바람한점 없는 그런 날씨다.
곳곳 계곡에 주저 앉은 사람들...
우리도 예외일수 없다 싶다.
설잠교 못가 계곡에 주져 앉는다.
잠시나마 더위를 식히기에 충분하지만 그래도 계곡은 계곡이다 싶다.
조금씩 조금씩 바람이 일렁인다.
게다가 착운 오미자 음료가 속을 식히니 조금은 견딜만 하다 싶다.

설잠교다.
용장골 들머리에 있는 설잠교 26m의 거리, 2004년에 완공했다는 인도교이다.
신라시대에 용장사가 있었다 하여 용장골이라 불러 왔다는 이곳...
김사습이 머물며 금오산실을 짓고 유금오록에 155수의 시를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은곳이며 속세를 떠나 산승으로 있으면서 단종에 대한 변함없는 충절로 북향화를 심었던 곳이라 하여 이곳에 다리를 놓아 매월당 김시습을 기렸다하여 다리이름을 김시습의 법명을 따라 설잠교라 하였다고 한다.

돌확이다.
돌확은 곡식이나 양념을 가는 데 쓰는 연장인데 조금은 좁다는 그런 느낌이다.
용장사지까지는 가파른 길에 또 산죽길에 바람한점 없는 그런길에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을 주체할수 없을정도의 무더위다.
짧은 거리임에도..............

용장사지라는곳이다.
신라경덕왕때 고승 대현과 조선시대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느시대에 페사가 되었는지 알수 없는데,
조선 초기 설잠스님이(김시습) 이곳에 머물며 듬오신화를 썼다고 하니 아마도 조선 중기까지 있었다는 기록이다.
그중에서 안내판에 있는 김시습의 싯귀를 모셔 왔다.

 

茸長山洞窈 (용장산동요) : 용장골 골 깊으니
不見有人來 (불견유인래) : 오는 사람 볼수 없네
細雨移溪竹 (세우이계죽) : 가는비에 신우대는 여기저기 피어 나고
斜風護野梅 (사풍호야매) : 비낀 바람은 들매화를 곱게 흔드네
小窓眠共鹿 (소창면공록) : 작은창가엔 사슴함께 잠들었어라
枯椅坐同灰 (고의좌동회) : 낡은 의자엔 먼지만이 재처럼 쌓였는데
不覺茅첨畔 (불각모첨반) : 깰줄을 모르는구나 억새처마 밑에서
庭花落又開 (정화락우개) : 뜨락엔 꽃들이 지고 또 피는데....

용장사에서 그에게 외로움 같은걸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다시 올라선다.

삼륜대좌불(보물 제187호)이다.
불두가 없어진.......
삼륜대좌불은 원형의 대좌가 세 개 있고 그 위에 부처님이 앉아 있어 그런 이름이 붙혀졌다고 한다.
공식명칭은 용장사곡 석불좌상이다.
둥근 형태의 대좌, 이것은 초기 불교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양식이다.
높이가 일장육척(一丈六尺) 장륙상이라는 석불 좌상이다.
장육상이라고 하면 지금의 단위로 환산하면 5m나 되는 큰 부처님이다.
그러나 이곳의 삼륜대좌불인 미륵좌상의 높이는 머리가 있는 것으로 가정한다고 해도 2m가 되지 않는다.
아마도 이 삼륜대좌불 전체의 높이를 생각해서 장육상이라 부른 것 같다.
그리고 그옆에 마애여래좌상이 암벽에 새겨져 있다.

마애여래좌상이다.
자연 암벽에 조각된 마애여래좌상은 단정한 이목구비가 돋보인다는 설명이다.
삼륜대좌불의 북쪽 바위의 벽면에는 마애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약한 돋을새김이어서 입체감이 느껴진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에 긴귀, 꾹 다문 입술 등으로 인해 조금은 근엄해 보인다.
양 어깨에 걸친 가사에는 평행선으로 이루어진 잔잔한 무늬가 밀집되어 있다.
또 옷이 왼 어깨에서 오른쪽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이다.
손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부분에 놓여 있다.
불상은 연꽃이 새겨진 대좌 위에 양 발을 무릎 위로 올린 자세로 앉아 있으며, 머리광배와 몸광배는 2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이를 위로 하고 올라서는데 용장사지 삼층석탑이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이다.
보물 제186호 인 삼층 석탑......
상륜부가 없고 지붕돌 일부가 깨져 완벽한 아름다움이 조금은 사라진 듯하지만 남산이라는 거대한 기단 위에 세워진 하늘 아래 첫 번째 탑이다.
2단 기단위의 3층석탑 높이는 4.4m라는 삼충석탑..
자연 암반을 다듬어 만들었다고 한다.

좌대의 모습이다.
용장사지 주변으로 흩어진 불국정토의 모습
조금더 발굴을 해서 예전의 화려했던 그런 모습을 기대할수 있을런지
그리고 후대에 고스란이 전해지는 자연사 박물관이 되길 간절이 소망해본다.

임도로 고위봉,금호봉 으로 나눠지는 삼거리다.
우리는 이곳에서 금호봉 방향이다.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약 700m....
덥다

금호봉이다.
정상석을 인증삿으로 카메라에 담고는 약수골 가는 길목에 주져 앉는다.
식사하고 가기로 하지만 더위를 탄건지 아니면 계속 물만 마시더니만 입맞을 잊어 버렸다는 아내...
그래도 이곳에서 식사하고 가기로한이상 10여분을 더위를 달래어 본다.
바람이라도 있으면 금방 회복 될것 같은 마음이지만 어디 마음대로 되는거 봤나
아마도 그렇게 가만이 앉아서 한 20여분 지난것 같다.
물론 그사이 시원하게 해논 맥주로 더위를 식히긴 했지만 ....
약 1시간의 여유
그리고 식사후 금호봉을 내려선다.

상사바위다.
상사바위는 높이가 약 13m 길이가 25m 가량되는 큰 바위로 이 바위에 빌면 상사병도 고쳐 주고 아기도 낳게 해 준다는 상사바위라고 한다.

임도를 개부수 했다.
수입산인 야자 매트로 국립공원을 덮어 놓았다.

해목령이다.
게의 눈을 닮은 지형이라 하여 해목령이라 했다고 한다.
국공트럭도 올라왔다.
왜이지 라면서 잠시 쉬는데 젊은 친구들이다.
등산로 가로목사이 물빠짐 시설보수중이란다.
이더운데...
내일 모래 많은 비가 온다하여 보수중일거란 생각이다.
출발이다.

이정표다.
금오봉 2.6km, 부처골 입구2.2km, 상서장2.1km, 당간지주1.7km라는 이정표다.
이곳에서 우리는 당간지주 이정표대로 하고 하산할 예정이다.

샘터다.
제법 많은 물이 흐르고 있다.
한컵 받아 마시는데 시원하기 이를데가 없어 결국 비워 있는 2개의 물통에 가득 받아서 내려선다.

경주 시내와 우리가 내려설 남간마을이 발아래 있다.
저곳이 나정이고 저쪽이 어디고...
뭐 이더븐데 뭐이 어떻고 저떻고 할새가 어딨노
가자...
ㅎㅎ

 

당간지주다.
당간은 절에서 불교의식을 할때 부처와 보살의 공덕을 기리거나 마귀를 물리칠 목적으로 달았던 "딩"이라는 깃발의 갓대를 말하며 이당간을 받쳐세우는 돌기둥을 당간 지주라 한다.
남간사는 해목령을 뒤로 하고 서남산에 있었던 절로 지금은 주춧돌과 우물등이 남아 있으며 당간 지주는 동서로 70cm의 간격을 두고 마주보고 있다.
다시 키메라에 담고는 마을 길따라 들어 선다.
여전히 따가운 햇살이 숨을곳을 찾게 만든다.
하여 남간 마을 정자에서 잠시나마 햇살을 피한다.
그리고 경주 고택 앞에 자리한 한옥이 개인것이내 누구것이냐를 두고 한창 실랑을 벌였다.
씰데없이......
다시 출발 한다.
버스 타러...

경주 나정이다.
버스 타러 가는길에 양산재를 오른쪽에 두고 경주 나정을 만난다.
나정(蘿井)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탄강처(誕降處)로 기록되어 있다.
그 기사의 대략을 살펴보면,
어느 날 진한 6촌(이.최.정. 손.배.설씨)의 하나인 고허촌(高虛村)의 촌장 소벌공(蘇伐公)이 양산 밑 나정 우물 옆에 있는 숲 사이를 바라보니 하늘로부터 이상한 빛이 드리웠고, 그 빛 속에 흰 말 한마리가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다.…
그 알을 이상히 여겨 깨어보니…
이에 6촌 사람들은 그 아이의 출생이 이상하였던 까닭에 그를 높이 받들어 임금으로 삼았다."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포석로에 내려서는데 S오일 주유소도 있고...

남간 마을 입구에는
서라벌이라는 나라를 세우기 이전 경주 일대에는 여섯 고을이 있었는데 이들 여섯 촌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신인들이 촌장으로 있었는데 이들 여섯(이.최.정. 손.배.설씨)시조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는 양산박
그리고 그 양산제 욱부전으로 바꿔부른다는.....
배씨시조사당 등
일성왕릉의 이정표가 입구에 줄줄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10여분을 기다려
나정 간이 주차장에서 500번 버스로 용장리 주차장까지 이동후 차량을 회수 집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