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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산행기

200427 경주 남산 고위봉 (용장2리-천우사-이무기능선-고위봉-이영재-용장사지-용장2리)

by 명산 김승곤 2020. 4. 27.


경주 남산 /고위봉(494m)


1.산행구간 : 용장2리-천우사-이무기능선-고위산-이영재-용장사지-용장2리
2.산행일자 : 2020. 04.27(월요일)
3.산행거리 : 9.58km
4.산행동무 : 아내


◎ 용장 주차장(10:35)
◎ 용장골 입구(10:45)
◎ 이무기 능선 갈림길/천우사(10:55)
◎ 고위산/494m/경주27(12:20)
◎ 백운재 (12:30)
◎ 이영재 (14:00)
◎ 금호봉/용장사지 갈림길(14:20)
◎ 용장사 3층석탑(14:30)
◎ 설잠교(14:50)
◎ 용장 주차장(15:20)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진환자가 10,738명이라는 질본의 발표다.
어제보다 10명 늘어난 ....
이제 거진 사회적 방역으로 전환해야할 싯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하지만 다음주가 연휴가 아닌가
4월 30일(부처님 오신날)부터 이어지는 근로자의날(5/1), 그리고 토요일 일요일,월요일, 그리고 어린이날까지..
월요일 하루만 휴가를 내면 6일간의 기나긴 연휴인셈이다.
예년도 같았으면 모두들 해외로 해외로 나갔겠지만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해외에 나가도 자국에서 14일간 격리한다는 원칙에 해외는 나가지 못하고 대신 제주도 강원도로 모여들고 있다니 각지자치단체에서 오지말라는 읍소까지 하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한 결과다.
오라고 난리칠적에는 언젠데 싶다.


하동에 찻잎을 채취하러 가야하는데 시간이 맞질 않는다.
지난 곡우를 전후 4월 19일 부터 2박3일간 체취하려 갔다 아직 나오지 않아 찻잎만 바라보다 그냥 왔다.
물론 여수 낭도까지 둘러왔지만
하여
혹시나싶어 4월 27일부터 2박3일간 그리고 5월 5일부터 2박3일간 켄싱턴리조트을 예약 했었는데 여전히 밤의 기온이 지배하고 있는지라
4월 27,28,29일은 취소를 했었다.
찻잎이 나질 않을것 같은 생각에..
그것도 하루치 리조트비용을 취소수수료를 물어가면서까지
그리고
5월 5일부터 2박3일간은 참 고민이다.
 기상청 예보에 의하면 5월3일 4일은 잠시 구름끼다. 그리고 다시 5일부터 비온다는 예보다.
큰일이다
또 바꿔야 하나...
어쩌지
이렇게도 날씨를 맞출수가 없나 싶다.
뭐 어째튼 기다려 보기로 하지만 마음 급한 안의 마음또한 헤아리지 않을수 없는게 사실이다.
4월 29일 부터 1박2일 다녀올까
아니면 가다려볼까.
하다 결국 4월 29일 1박 2일로 다녀올까 하여 예약되어 있던 치과일정도 바꾸고...
그리고
산행 다녀온후 18시 기상청 예보는 5월 5일 흐림, 그리고 6일 비 7일 맑음으로 바꿨다.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게 기상인가 싶다.
이러니 구라청이라 소리 듣지 싶다.
하여 예정대로 5월 5일 2박3일 일정으로 진행하기로 한다.


목적지는 경주 남산이다.
어제에 이어 산행길이지만 시실 산행계획이 없었다.
4월들어 너무 많이 다닌것 같아 발목도 시리고 약간의 통증도 있고 하여 가급적 산행을 줄이고자함이 목적인데 주변 상황이 놔두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너무 많이 다닌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안가면 후회 할것 같은 그런 느낌 이다.
목적지는 경주 남산이다.


200427 고위산.gpx


용장리 주차장이다.
텅비디시피한 주차장 몇대만이 주치되어 있다.
주차요금소는 만들었지만 주차비를 받는이는 없고 문은 오픈해놓은 상태이다.
이따금 주변 상가 차량들만이 오가는 그런 만남의 주차장인듯 싶다.
한켠에 주차하고 곧장 출발한다.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대해서 안내를 해놓았다.
한국 문학 사상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라는 걸작을 창작해서 이 땅에 불후의 금자탑을 세운 김시습
강릉 김씨지만 경주를 고향처럼 생각하며 금오산과 경주를 오매불망 사랑했던 매월당 김시습
31세 때 용장사에 금오산실을 짓고, 37세까지 7년 동안을 경주에서 시를 짓고 소설을 쓰며 시대와의 불화를 달랜 조선시대 지식인이자 방랑 시인의 선구자 설잠 김시습의 관한 내용이다.

골목길마다 치워난 꽃들이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를 짓게 만든다.
연산홍 철쭉..
그리고 해당화 ,겹사쿠라
파란 하늘과 비교 된다.
참 좋은 계절인만큼 사실이다.
이런날 집에 있었으면 얼마나 후회스럴까 라며 발길 이어 간다.

해당화



용장골 입구이다.
탐방안내소가 있긴 하지만 텅비워 버린 안내소 문은 굳게 잠겨 있다.

천우사 즉 이무기능선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화장실은 멋지게 만들어 놓았다.
입산자 통계를 위한 계수기도 있고...

이무기능선 입구다.
국공에서 구조요청 안내판을 세워두고 재난 취약지구라는 이유로 기상특보시 입산하지말라는게 목적이다.

계단길 한건 좋지만 너무 높다.
짧은 다리 고생께나 하겠다 싶다.


어김없이 철쭉을 피워 놓았다.
숱하게 많이도 왔지만 경주 남산에 이렇게많은 철쭉이 있으리라 생각을 못했다.
산행내내 카메라를 들이되기 바빴다.








역시 이무기능선 답게 오르내리는 암릉길이 재밌다.
이따금 부는 바람도 시원하게 다가오고..
그런데 역시나 햇살이 들어가니 바람은 차다.
햇볕의 중요성이 얼마나 중요한것인지 다시 한번 느껴본다.



고위산이다.
494m라는.....
그런데 아무도 없다
주변에는 온통 철뿍밭이다.
정상석을 카메라에 담고는 그냥 출발이다.




백운재이다.
바닥이 빤지르 하다.
흙도 그러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흔적이지 싶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성 거렸으면....
그리고 언제나 백운암 가는길은 통제되어 있다.
국공에서 벌금운운 하면서


칠불암 가는 길목이다.
이곳에서 식사하고 가려던 계획은 마누라가 벌써 하는 바람에 그냥 지나친다.
물론 따스한 양지바른 길목에 앉아 거진 1시간 가량을 놀다 간다.
그리고
여전히 길목에는 철쭉이 반긴다.
철쭉이 이렇게 많았었나 싶다.





이영재다.
어르신들의 산길이 앞을 막고 있지만 누구하나 마스크 쓰는 이 없다.
물론 산길에 마스크 쓴다는 자체가 부담스런일런지 모르지만 그래도 라는 생각이다.
아니면 말이라도 하지 말든가
서고 듣기나말거나한 이야기를 하니 제법 시끄럽다.
저러니 젊은 사람들이 싫어하는게 아닐까 싶다.
나도 나이는 먹어 가지만 고민이다.
말을 많이 해도 안해도 꼰소리를 듣는다니 참 기이한 이야기다.

임도길이다.
통일전 주차장으로, 포석장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임도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동네 뒷산 다운 모습이다.

삼화령이다.
부처님 앉은 연화좌대의 모습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용장사지 갈림길이다.
금호산에 가서 약수암으로 하산하려다 오늘만 날이가 싶어 그냥 용장골로 내려선다.

좌대의 모습이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이다.
누군가가 판촉의을 입고 오르내리면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삼층석탑 위아래 카메라도 설치해놓고..
뭐하는거지
하여 뭐하는건지 물어봐도 되냐니 새사진찍는단다.
근데 새사진 찍는건 좋지만 석탑위에 빵부스러기가 잔뜩 놓여 있다.
보물 제186호 삼층석탑이라는데 이래도 되는건지 묻고 싶지만 그냥 돌아선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은 상륜부가 없고 지붕돌 일부가 깨져 완벽한 아름다움이 조금은 사라진 듯하지만 남산이라는 거대한 기단 위에 세워진 하늘 아래 첫 번째 탑이다.
2단 기단위의 3층석탑 높이는 4.4m라는 삼충석탑..
자연 암반을 다듬어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산전체를 기단으로 삼아 만들었다는.....
통일신라 후기작이라 한다.
단지 윗부분이 없어진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에서 보는 삼륜대좌불의 모습이다

마애여래좌상이다.
자연 암벽에 조각된 마애여래좌상은 단정한 이목구비가 돋보인다는 설명이다.
삼륜대좌불의 북쪽 바위의 벽면에는 마애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약한 돋을새김이어서 입체감이 느껴진다.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에 긴귀, 꾹 다문 입술 등으로 인해 조금은 근엄해 보인다.


양 어깨에 걸친 가사에는 평행선으로 이루어진 잔잔한 무늬가 밀집되어 있다.
또 옷이 왼 어깨에서 오른쪽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이다.
손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배 부분에 놓여 있다.
불상은 연꽃이 새겨진 대좌 위에 양 발을 무릎 위로 올린 자세로 앉아 있으며, 머리광배와 몸광배는 2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삼륜대좌불(보물 제187호)이다.
삼륜대좌불은 원형의 대좌가 세 개 있고 그 위에 부처님이 앉아 있어 그런 이름이 붙혀졌다고 한다.
공식명칭은 용장사곡 석불좌상이다.
둥근 형태의 대좌, 이것은 초기 불교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양식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유가종(瑜伽宗)의 조사 스님인 대현(大賢)이 8세기 전반 남산 용장사에 살았다.
당시 절에는 미륵장육상이 있었다.
대현스님이 이 장육상을 돌면 삼륜대좌 위에 앉은 부처님도 스님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고 한다.
삼국유사를 쓴 일연스님은 대현스님의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시에 담았다.


남산의 불상을 도니 불상도 따라 얼굴 돌려           遶佛南山像逐旋
청구(대현스님)의 불교가 다시 중천에 떠올랐네.   靑丘佛日再中懸
궁중 우물물 솟구치게 한 것이                             解敎宮井淸波湧
향로 한 줄기 연기에서 시작될 줄 누가 알리.         誰識金爐一炷烟


높이가 일장육척(一丈六尺) 장륙상이라는 석불 좌상이다.
장육상이라고 하면 지금의 단위로 환산하면 5m나 되는 큰 부처님이다.
그러나 미륵좌상의 높이는 머리가 있는 것으로 가정한다고 해도 2m가 되지 않는다.
아마도 이 삼륜대좌불 전체의 높이를 생각해서 장육상이라 부른 것 같다.


자료를 보면
여기서 일장육척이라는 단어.....
장(丈)이라는거.....
중국 주(周)나라에서는 8척을 1장이라 하고, 성년 남자의 키를 1장으로 보았다고 한다.
사람의 키만한 길이를  한길이라고 하는 것도 거기서 유래된 듯하다.
1장 = 10자[尺] = 3.03m


육척(六尺) 이라는....
자는 손을 폈을 때의 엄지손가락 끝에서 가운뎃손가락 끝까지의 길이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자의 한자인 척(尺)은 손을 펼쳐서 물건을 재는 형상에서 온 상형문자(象形文字)이며,처음에는 18cm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차차 길어져 한(漢)나라 때는 23cm 정도,
당(唐)나라 때는 24.5cm 정도로 되었으며,
이보다 5cm 정도 긴 것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고려 및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32.21cm를 1자로 했으나,
세종 12년의 개혁시에 31.22cm로 바꾸어 사용해 오다가 한말(1902년)에 일제의 곡척(曲尺)으로 바뀌면서 30.303 cm로 통용되었다고 한다.
1자=1척 = 10치[寸] = 10/33m = 30.30 cm

그러니 일장육척(一丈六尺)이라면 3m+(30*6)=4m80cm 라는뜻이다.

용장사지라는곳이다.
신라경덕왕때 고승 대현과 조선시대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느시대에  페사가 되었는지 알수 없는데,
조선 초기 설잠스님이(김시습) 이곳에 머물며 듬오신화를 썼다고 하니 아마도 조선 중기까지 있었다는 기록이다.

돌확이다.
돌확은 곡식이나 양념을 가는 데 쓰는 연장인데 조금은 좁다는 그런 느낌이다.

설잠교이다.
신라시대에 용장사가 있었다 하여 용장골이라 불러 왔다는 이곳...
김사습이 머물며 금오산실을 짓고 유금오록에 155수의 시를 남겼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은곳이며 속세를 떠나 산승으로 있으면서 단종에 대한 변함없는 충절로 북향화를 심었던 곳이라 하여 이곳에 다리를 놓아 매월당 김시습을 기렸다하여 다리이름을 김시습의 법명을 따라 설잠교라 하였다고 한다.
용장골 입구의 출렁다리이다.
2016년 설치 되었다고 한다.

용장골 입구다.

용장골 입구로 내려서려다 금오산 용장사방면으로 내려선다.
이쪽길은 처음인데 마을 안길따라 주차장하고 곧바로 연결 된다.
그리고 산길을 끝낸다.
집에 있었으면 후회햇을것 같은 고위봉 즉 경주 남산산길
무엇보다 경주야외박불관이 야외정원으로 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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