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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220801 함양 투어 1박2일

by 명산 김승곤 2022. 8. 5.

농월정

 

수승대 주차장을 빠져 나와 37번 도로를 따라 마리면까지 나와 안의가는 3번 국도를 따라 달리는데....
왕복4차선 도로다.
그러니 안의면 까지는 금방이다.
그러니까 안의 가기전 26번도를 을 따라 가면 국민관광지 화람동 계곡 이다.
주차장은 넓고 깨끗하지만 그앞 상가들이 지저분한 그런 느낌...
이게 무슨 국민 관광지라고...
농월정 이정표를 따라 다리를 건너 농월정으로들어선다.

농월정
조선 중기
안의면 성북마을 출신인 지족당 박명부공께서 광해군때 영창대군의 죽음과 인목 대비유배에 부당함을 직간 하다 파직되어 고항으로 돌아와 은거하면서 방대한 너럭바위와 주변경관이 수려한 이곳에 
서당을 짓고 심신을 수련했다고 한다.
인조 반정후 예조참판과 강릉도호부사등을 지냈으며 말년에는 왕이 불러도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1637년 농월정을 짓고 후학을 가르키며 쉬던곳으로 몇 차레 중수를 거쳤다고 한다.
1899년 현재의 모습으로 건립되었으며 정자 오른쪽 암반에 선생께서 지팡이를 짚고 놀던곳이라 하여 지족당 장구지소라는 글자를 새겼놓았다고 ...
달 밝은 고요한 밤에  암반위의 냇물에 비친 달빛은 한잔의 술로 달을 희롱한다는 선비들의 풍류와 멋을 함축하고 있다고 ....
그리고
2003년 화재로 전소 되어 옛모습을 찾기는 함들지만 2016년 복원 했다고...
소실전에는 뒤쪽 한가운데 한칸짜리 바람막이 작은 방을 둔 정면 3칸, 측면2칸 팔작지붕 누각으로 3개면에 계자난간을 두고 있다고 했다.

정자에 올라서면 물이 많아 달바위는 커녕 힘차게 흐르는 세찬 물과 함께 이를 감상이라도 하듯 119 구조요원 둘이서 휴대폰 삼매경에 빠져 있다.
정자와 너럭 바위가 많아 팔담팔정이라 불리는 화림동 계곡이라 했는데
아쉽운 발걸음을 돌린다.

화림동계곡 입간판

거연정

 

농월정 주차장에서 10분......

봉전마을이다.

 

거연정

함양 거연정(居然亭), 명승86호, 경남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고려 말 전오륜의 7대손 가선대부 동지충추부사를 지낸 화림재 전시서 선생이 처음 터를 잡은 것을 추모하기 위하여 1872년 화림재 선생의 7대손인 진사 전재학, 전계진 등이 건립하였으며 1901년 중수가 있었다. 거연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중층 누각 건물로 내부에는 벽체(뒷벽)를 판재로 구성한 판방을 1칸 두고 있으며, 겹처마에 합각지붕 형식으로 하천내의 자연암반 위에 조성된 정자 건물로 주변의 뛰어난 경관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자연에 내가 거하고, 내가 자연에 거하니” 길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세상일을 잊게 하는 곳이다. 

군자정, 
정여창이 즐겨 찾았던 화림동 계곡에 세워진 정자
경남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에 있는 군자정(君子亭)이다. 덕유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남강 상류 화림동 계곡에 세워진 여러 정자 중 하나로 부근에 처가가 있었던 조선중기 유학자 정여창이 즐겨 찾았던 곳이라 한다.

정자는 19세기에 전세걸 등이 그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건물은 계곡에 있는 바위 위에 지어진 누각건물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내부는 방이 없고 넓은 마루로 되어 있다. 

건물 초석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기둥으로 사용한 목재도 대충 다듬어 사용해서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남계서원이다.

남계서원
552년(명종 7)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정여창(鄭汝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566년(명종 21)에 ‘남계(藍溪)’라고 사액되었으나,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소실되었다. 
1603년에 나촌(羅村: 현재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구라마을)으로 옮겨 복원하였다가 1612년 옛 터인 현재의 위치에 중건하였다.

1634년(인조 12) 별사(別祠)를 건립하여 강익(姜翼)을 제향하고 1642년(인조 20) 유호인(兪好仁)과 정온(鄭蘊)을 병향하였다. 
그 뒤 1677년(숙종 3)에 정온을, 1689년(숙종 15)에 강익을 본사(本祠) 올려 배향하고, 1820년(순조 20) 정홍서(鄭弘緖)를 별사에 모셨다. 
이후 1868년 별사는 훼철(毁撤)되었다. 이 서원은 소수서원(紹修書院)에 이어 두 번째로 창건되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경내 건물로는 사우(祠宇)·전사청(典祀廳)·명성당(明誠堂)·양정재(養正齋)·보인재(輔仁齋)·애련헌(愛蓮軒)·영매헌(詠梅軒)·풍영루(風咏樓)·묘정비각(廟庭碑閣)·고직사(庫直舍) 등이 있다.
사우에는 정여창을 주벽(主壁)으로 하여 좌우에 정온과 강익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명성당은 강당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왼쪽 협실은 거경재(居敬齋), 오른쪽 협실은 집의재(集義齋)라 하며,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강론 장소 등으로 사용되었다. 
동재(東齋)인 양정재와 서재(西齋)인 보인재에는 각각 연못과 애련헌·영매헌이 있다.

이 서원은 1974년 2월 16일 경남 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된 후,
2009년 5월 26일 사적 제499호로 지정되었다. 
매년 2월과 8월 중정(中丁)에 향사(享祀)를 지내고 있다. 
함양의 남계서원은 2019년 7월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라는 명칭으로 다른 8곳의 서원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상림숲...........

 

함양사람들은 옛친구들보다 더 그리워 한다는상림숲....
1962년 12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숲전국대회,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할 아름다운 숲으로...
등 많은 수상을 자랑하고 있다고........
함양숲은 
신라 진성여왕때 천녕군의 태수였던 고운 최치원선생이 재임중 마을과 농경지를 보호하려고 조성힌 인공림이라 전해 지고 있다고...
지금의 위천강...
함양읍을 중앙으로 흐르는 강물이 때로는 범람하여 이를 막기 위해 둑을 쌓고 나무를 삼었다고 ..
처음에는 대관림이라 하여 재해방비, 풍치, 경관 보호등을 위한 숲으로 보존 되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중간부분이 유실되어 상림과 하림으로 나눠 지게 되면서 분뢰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