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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산행기

190620 선도산(무열왕릉주차장-선도사-선도산-옥녀봉-큰갓산-동국대-김유신장군묘-숭무전)

by 명산 김승곤 2019. 6. 20.


선도산(390m)

 

1.산행구간   : 무열왕릉주차장-선도사-선도산-옥녀봉-큰갓산-동국대-김유신장군묘-숭무전
2.산행일자   : 2019. 06.20(목요일)
3.산행거리   : 14.67km
4.산행참가자 : 아내



◎ 경주 태종 무열왕릉 주차장(09:40)
◎ 도봉서당(09:50)
◎ 성모사(10:35)
◎ 선도산/390m(10:45)
◎ 충효 sk주유소(11:40)
◎ 옥녀봉/276m(12:20)
◎ 큰갓산/x284m(14:00)
◎ 동국대(15:10)
◎ 동국대병원(15:20)
◎ 송화산(15:45)
◎ 김유신 장군묘(16:00)
◎ 김유신 장군묘 주차장(16:10)
◎ 흥무공원(16:20)


5.산행기

선도산 산행이다.
경주 남산 즉 금오봉 오르는길 바둑바위애서 보았던 그 선도산이다.
660년 당나라와의 연합으로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 태종무열왕릉을 품은 그 선도산
그리고 신라 삼국 통일을 이룬 김유산 장군묘지를 품고 있는 송화산
늘 함 가봐야지라는 말이 결국 오늘에서야 실행하게 되었다.



190620 선도산.gpx


09시40분 태종 무열왕릉 주차장이다.
따가운 햇살이 아침부터 지치게 만든다.
기온이 32도까지 올라 간다는데 오늘 산행이 조금 힘들겟다는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미 시작했는데
하산후 시간이 되면 둘러보기로한 태종 무열왕릉(太宗武烈王).



신라 제29대 왕이다.
신라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 이름은 김춘추다.
654년 진덕여왕이 자식 없이 죽자 상대등 알천과 귀족들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다.
즉위 후 왕권을 강화하는 한편 당나라와는 신뢰 관계를 유지하여 백제 정벌에 나서는데 660년 당나라 소정방이 이끄는 13만 군사와 김유신장군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켰으며 삼국통일의 기초를 마렸했었다는 기록이다.
곧장 햇살을 피해서 출발한다.

서악 마을이다.
서악은 경주의 서쪽에 있는 선도산을 일컫는 말이다.
즉 신라시대를 통틀어 서악은 신라인들에게 신령스러운 산으로 숭배되었다
그리고 통일 신라시대이후는 서악으로는 계룡산을 그리고 북악은 태백산, 중악을 팔공산,남악을 지리산 그리고 동악을 토함산이라 했으며 국가적으로 중요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다.

도봉서당(桃峯書堂)이다.
도봉서당은 조선 성종 대의 학자였던 불권헌 황정의 학덕과 효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545년(중종 1년) 지금의 위치에 추보재라는 묘사재실로 건립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전란과 긴 세월을 거치며 훼손되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불권헌 황정의 후손들이 1915년 추보재가 있었던 자리에 도봉서당 일곽을 중건한 것이 현재의 모습이라고 안내 하고 있다.




보물 제65호인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 (慶州 西岳洞 三層石塔) 이다.
카메라로 당겨 그림에 담는다.
자료를 보면
통일신라시대 모전탑 계열에 속하는 탑으로, 무열왕릉 동북쪽 비탈진 곳에 서 있다라고 적혀 있다.
모전탑은 전탑(전탑: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을 모방한 것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것을 말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이 탑은 독특한 기단 형식으로 미루어 보아 경주 남산동 동ㆍ서 삼층석탑(보물 제124호)을 모방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설명이다.

서악동 삼층석탑 옆 고분 주의로 국화를 식재 해놓았다.
가을에 다시 한번 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산길은 왼쪽 임도 방향이다.

구멍바위다,
자료을 보면 표면에 크고 작은 홈들이 500여 개가 새겨져 있어 성혈바위 또는 바위구멍으로 불린다라고 한다.
제작 시기는 선사시대로 추정되며, 바위의 크기는 장축 780cm, 단축 210cm이다.
바위에는 기하학적 문양과 여러 선이 연결되어 있어 농경시대의 민간 신앙과 관련된 유적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형태의 바위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보이는데 학계에서는 바위구멍을 별자리와 태양숭배, 풍요와 다산의 상징물 등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알바위, 알터와도 관련이 있다는 설명이다.
경주 풍물지리지에는 이곳을 용작곡으로 표기하고 있어 용 신앙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는 학설이 있다.

헌안왕릉(47대 857-861), 문성왕릉(46대 839-857), 진지왕릉(25대 576-579), 진흥왕릉(24대 540-576)이다.

포장도로 끝에서 왼쪽으로 산길이 연결 된다.

선도산 가는 길이다.
선도산은 1971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 2009년 5월 11일  화재로 인해서인지 곳곳 사목으로 얼룩져 있다.
전설이 하나 있어 옮겨 왔다.
서악(선도산) 꼭대기에서 오줌을 누었는데 경주가 오줌에 잠기는 꿈을 꾼 김유신 누이였던 보희는 그 꿈을 동생 문희에게 비단 치마 한 벌에 팔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처녀가 오줌을 싼 꿈이 어찌 좋을 수 있을까 마는 문희는 언니의 꿈 이야기를 듣고 이를 사게 되었고, 이 꿈으로 인해 훗날 선덕 공주의 도움으로 김춘추와 결혼을 하게 된다.
이후 김춘추는 태종 무열왕이 된다는 그런 내용이다.

깨묵이라 한다.

어렸을때 그러니까 배고프던 시절 많이 따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선도사다.

聖母祠다.
성모사는 신라 시조모이자 박혁거세의 어머니로 알려진 성모를 모신 곳이다.
삼국유사 권5 감통편에는 이곳 성모와 관련한 선도성모수희불사(仙桃聖母隨喜佛事) 기록을 통해 성모를 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경주 서악동 마애여래삼존입상(보물 제62호)에 관한 안내글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신라 사람들은 경주의 서쪽인 선도산 정상부근을 서방정토로 생각하고 이곳에 아미타 삼존불을 새겼다.
조각하기 힘든 암석에 높이 6.85m 나 되는 거구의 여래입상을 돋을새김하였다.
아미타여래 입상을 본존으로 하여 왼쪽에는 불상이 새겨진 보관을 쓰고 정병을 든 관세음보살상이,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상이 잇는데 이 두 보살상은 옮겨온 화강석으로 다듬어진 것이다.
중생의 어리석음을 없애 준다는 대세지 보살은 얼굴과 손 모양만 다를 뿐 관세음보살상과 동일하다.
조각 솜씨로 보아 7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는 그런 내용이다.

조망

선도산이다.
비록 390m의 고도지만 결코 만만한 그론산길은 아니다 싶다.
더운 말씨라 흠뻑 흘린 땀방을을 잠시 밀린다.
평일이라서인지 아니면 원래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은곳이라서인지 정상은 돌탑 세개와 정상석이 전부다.
주변에 앉아서 잠시 간식을 즐긴다.
아직 갈길은 많이 남았는데 초장부터 힘뺐다 싶다.
10여분 쉬다 선도산을 뒤로하고 내려선다.
방향은 선원사 방향이다.


선원사 샘터다.
졸졸 흐르는 샘터...
약수터라고 인터넷에 오르내리는 그런 약수터다.
누군가가 갔다놓은 물바가지 그리고 빗자루등이 전부지만 물이 흘러 내리는 주변은 이끼로 얼룩져 있다.
물통에 물을 받아 간다니 고개를 가로 졌는 마누라..
하지만 사먹는 물 보다야는 났겠지라는 나의 지론이다.


충효동이다.
충효 주유소를 왼쪽에 두고 황단보도를 건너면 세븐 일레븐 앞길따라 주욱 가면 조그만한 다리와 함께 경주 왕족, 평사리 가는길이라는 간판을 볼수 있는데 그쪽으로 들어 가면 포장길이 이어진다.



도로를 따라 끝까지 오면은 ....

안쪽 포장길따라 올라서면 충효 동산이다. 

총효동산이다.
포장길 끝단에 올라서면 충효 동산이다.
가족묘인듯 줄을 이어 평장의 비석을 새워 놓았다.
잠시 쉬어 간다.
이곳에서 옥녀봉까지 는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그리 높지 않은 옥녀봉이지만 선도산에서의 땀으로 얼룩진터라 다소 힘들거라는 생각이다.

송화산 옥녀봉이다.
276m이다.
뜨거운 햇살이 올라오는 내내 힘들게 했다.
아마도 근래들어 가장 힘들었던...
하여 여름이 시작되었는가도 싶고...
하지만 그래도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그런곳인지주변 상황도 좋다.
의자도 잇고 오가는 사람들의 채취도 있고..
그 유명하다는 선도산하고는 전혀 다른곳이다.
잠시 쉬다 다시 내려선다 방향은 큰갓산 방향이다.


전망대다.
이런곳에 전망대가 있는줄 알았으면 이곳에서 쉬었다 갈건데 시픈곳이다.
발아래에는 창소년들의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화랑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참 좋은곳에 자리 잡았다 싶다.
다음은 화랑마을 훔피 주소다.
http://www.gyeongju.go.kr/hwarang/index.do


진행할 큰 갓산이 시야에 들어 온다.
저렇게 한바퀴 돈다니 마눌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시작은 했는데...

등산로 정기를 잘해놓았다.

국립공원 답게.......
아마도 화랑마을에서 옥녀봉까지는 극기훈련의 일환으로 올라오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지도상 214m 에서 길이왼쪽으로 그리고 보일듯 말듯 오른쪽의 삼거리인데 선명햔 왼쪽산길은 큰마을로 그리고 우리가 갈 큰 갓산은 오른쪽이다.
주의해야할 지점이다.
또 지도상의 233m의 옥녀봉은 지나 왔다.
그냥 숲속의 무명봉에 불과 하다.
잠시후 무명봉 한가운데 앉아 식사를 하고 간다.

삐삐

큰 갓산이다.

284m이다.
큰 갓산 오르는길에 오른쪽 우회길은 마누라길...
그리고 혼자 올라서는데 벤치 하나에 284m그리고 다음 봉우리에 그늘막을 한 평상 그리고 곳곳 벤치가 놓여 있는 큰 갓산 봉우리다.
동국대에서 옥녀봉까지 5km라는 이정표도 세워져 있고...
마누라와 같이 올라왔으면 쉬었다 갈 그런 곳인데...
서둘러 내려선다.


산책길 이상으로 좋은길이다.
가을에 영알 식구들 한번 데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이다.

서경주역으로 가는 도로면에 내려서는데 경주교회 학생센터가 도로 건너편에 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동국데 부설 유치원 건물이고...
다시 송화산 가는길로 가야 하기에 잠시 동국대 앞 도로를 따라 이동한다.



뜨거운 햇살이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그만하면 안되겠냐는 아내의 하소연을  뒤로 하고 동국대 정문 그리고 병원앞을 지나  형산강이 흐르는 동국교 앞단에서 오른쪽 숲속으로 들어 선다.
마누라의 불평을 뒤로 하고 올라서는길
숭무전까지는 2.2km이다.

동국대

동국대 병원

동국교 앞에서 오른쪽 숲속으로.........




옥녀봉 갈림길이다.
그리고 지도상 송화산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 어디에도 송화산이라는 정상석은 없다.
동대교 1.3km,옥녀봉0.9km,숭무전 0.9km 라는 이정표만이 세워져 있고 또 주변에는 운동기구만이 세워져 있다.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그리고 방향은 숭무전 쪽이다.

여래사, 숭무전 갈림길이다.
경주시가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방향은 숭무전 방향이다.

김유신 장군묘지이다.
입장료(1000원)를 내고 들어 와야 하지만 오다보니 묘지 뒷쪽으로 들어 와버렸다.
김유신 장군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을 통일하는 데 가장 큰 업적을 남긴 명장으로 소개 하고 있다.
신라에 의해 532년(법흥왕 19)에 멸망한 금관가야의 왕족이었지만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金舒玄)는 각간(角干)으로 신라의 최고위급 관직이다.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는 김무력(金武力)도 각간을 지냈으며 증조부는 구충대왕(仇衝大王), 고조부는 겸지대왕(鉗知大王)이었다고 한다.


안내글에 따르면 충효동 송화산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구릉의 끝에 위치하고 흙을 둥글게 쌓아 올린 모양으로 둘레가 50미터, 지름이 18미터, 높이는 5.3미터 이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아래쪽에는 높이 1.2미터의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을 새긴 보호석이 둘러져 있는데 십이지신상은 평복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몸은 사람의 형체이고 머리는 동물 모양이리고 설명 되어있다.
또 좌우측에 세워진 비석은 좌측에 태대각간김유신묘(太大角干金庾信墓)라고 새겨져 있고 우측편 비에는 개국공순충장열흥무왕릉(開國公純忠壯烈興武王陵)이라고 새겨져 있다.
내려선다.




흥무문이다.
유래는 흥덕왕 10년에 장군의 공적을 기려 흥무왕이라 봉해져서 거기서 나온 이름인 것 같고 장군이 뛰어난 무인 출신이니 무를 흥하게 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뜻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하여 아래 흥무공원도 조성 해놓았다.

주차장


김유신 장군묘지 주차장이다.
그리고 오늘 산행은  이곳에서 마무리 짓기로 한다.
목표는 차량을 회수하는곳 태종무열왕 까지인데 마누라의 눈치를 보니 이건 아니다 싶다.
종일 산행을 해도 피곤해 하지 않던 마누라였는데 오늘이 덥긴 더웠던 모양이다.
또 그리고 도로를 두번이나 내려왔다 올라가야 하는 부담도 한몫했을거라는 판단이다.
어찌 되었던 간에 택시ㅏ를 이용하기로 하지만 이곳까지 올라올리가 있겠나 싶어 흥무공원으로 내려서서 택시를 이용 차량을회수한다.
그리고 김유신 장군묘지 주차장과 숭무전 아래 금산재로 옮겨 칼국수와 파전으로 요기를 한후 돌아 온다.

금산재 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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