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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180629 통영 1박2일

by 명산 김승곤 2018. 7. 2.


통영 1박2일


일시 : 2018년 6월 29일~30일
일행 : 하진수님,김두한님 부부 그리고 아내(6명)


지난 6월 정기산행 가는길에 나눴던 이야기 였다고 한다.
통영 놀러 오라는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고 한다.
나야 뒷쪽에 앉아 있었으니 알수 없었지만 나중에 일방적인 통고사항인셈이다.

6월 29일...
16시 출발한다는게 이러저러한 이유로 늦어졌는지 모르지만 예정시간보다 20분 늦었다.
차량은 진수형님이 담당하고 운전까지 제공한셈이다.
운전해본사람은 알수 있는 장거리운전....
잠도 오고....

ㅎㅎ

출발후 2시간만에 통영 도착이다.
늘 식구같이 반겨주는 용근형님
그새 정원은 많이도 바꿨다.
그리고 연명항의 바다는 늘 그대로인듯하다.
잡초 뽑을거 없느냐는 당부도 뒤로한채 식사부터 하자며 예약한 식당으로 자릴 옮기는데 자연산 회다.
그리고 전복이며 해삼등 자연산 어패루까지 한상 가득히 대접이다.
게다가 소주까지.....



2차는 용근형님 댁 처마밑이다.
정원 가로등으로 불빛 삼으며 오가는 정담은 시간 가는줄 모른다.
그리고 다시 자릴 윳놀이로 마감한다.
내일은 비가오지 않는다면 연화도로 트레킹 갈거라는 마음만 안고....

윳놀이의현장

30일
새벽 아내가 먼저 눈 뜯는지 창밖으로 손을 밀어 보더니 비온다는 전갈이다.
어쩌지라는 생각이다.
확인해봐야 하는 마음이 발동한다.
그러니 자동 반사다.
두둑 떨어진다.
물방울이.....
걸렀다.
하지만 많이는 오지 않는비라 이짝 저짝 둘러 보는 사이 잠시후 용근형님이 나온다
동네 한바퀴 둘러 보려는데 같아 가자는 이야기다.
거 심심하던차 잘됐다 싶다.
그렇게 따라 나선길...
연명마을 구경한번 잘했는데 말미에 쏟아지는 비에 우산을 받혔지만 하나뿐이라 .....
옷의 반은 적셔 버렸다.





식사후 이런저런 이야기로 소일후 어제저녁 마무리못한 윳놀이의 결과는 한쪽(김두한부부)으로....  식사하러 가기로 한다.
성림이다.


일명 통영 맞집이란다.
줄서서 먹는 집이라고....
반건조한 생선 구이집이다.
하지만 .......
1인 15000원이라는데 4명 한테이블에 생선선구이는 3인분 그리고 다른거 한가지더 추가 주문하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3인분이란 생선은 반건조가 아니고 거진 말란 생선이 대부분이다.
생선이 이빨도움을 받으려는듯..






전혁림미술관 (The Jeon hyuok lim Museum of Art)全爀林美術館


전혁림 화가를 서양화가 라고 소개 하고 있다.
통영의 피카소, 색채의 마술사,바다의 화가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한국적 색면추상의 선구자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조형의식을 토대로 자기 영역을 구축해 온 화가라고 한다.

미술관의 외벽은 전혁림의 작품 5점과 아들이자 화가인 전영근의 작품 5점으로 만든 세라믹 타일 7,500장으로 제작되어 있는데 통영의 바다와 화가의 예술적 이미지를 재현하고 있다고 한다.
3층 전면의 벽은 전혁림의 작품 (창/Window)을 타일 조합으로 재구성한 대형 벽화로 만들어져 있다.


전혁림 화가는 통영에서 출생하였으며 본관은 경산(慶山)이다.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으로 약칭)에 입선하면서 알려졌다.
그러나 이후에 중앙화단과 거리를 두고 고향 통영과 부산을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했다고 한다.






미술관은 전혁림이 1975년부터 30년 가까이 생활했던 집을 헐고 그 자리에 새로 지은 건물로, 2003년 5월 11일 개관했다고 한다.
비가오는날이라 더더욱 운치가 있는 미술관..
다행이 일행이 미술에 박삭한 지식을 전달 받을수 있어 관람하는데 이런 저런 질문이 오간다.




전혁림미술관은 상설 전시실과 기획 전시실, 화가의 작업실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는데, 전혁림의 작품 80점과 화가가 생전에 사용했던 물감, 캔버스 등 관련 자료 50여 점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관람은 자유 관람이다.

윤이상과 통영국제음악당





윤이상은

1917년 9월 17일 경상남도 산청에서 태어났고 통영에서 자랐다고 한다.
일제치하에서 항일조직 결성을 시도하던 중 한글 가사에 곡을 붙인 것이 발각되어 구속되기도 했다고 한다

1945년 해방 후 교편생활을 
1950년 가곡집 『달무리』를 출간하였고 초등학생들을 위하여 작곡한 많은 동요들도 같은 해에 발간된 검인정 교과서에 실렸다.

1955년 서울시 문화상 수상을 계기로 유학을 결심,
1957년 독일로 이주해 서베를린 음악대학에서 2년 간 수학했다.
1959년 다름슈타트에서 초연한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이 큰 성공을 거둠으로써 유럽 현대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63년 평양을 방문한 윤이상은 1967년 이른바 동백림 사건 때 박정희 정권에 의해 납치되었고, 국제예술계의 도움으로 1969년 사면될 때까지 감옥과 병원을 오갔다.

1969년 독일로 귀환한 윤이상은 이후 인권의 사각지대를 경고하고 인류의 평화를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걸작들을 썼나갔다.
1977년부터 1987년까지 베를린 예술대학 작곡과 정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는데, 그의 영향력은 독일을 넘어 미국, 일본, 중국, 한국, 북한 등에까지 이르고 있다.


퇴임 이후에도 작곡과 활발한 강연 및 교육을 통하여 세계 음악계에 이바지했던 윤이상은 1995년 11월 3일 베를린 자택에서 별세했고, 베를린 시가 인류에 명예로운 유산을 남긴 인물을 위해 조성한 가토우 지역의 특별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는 앞서 1994년 일본에서 배를 타고 고향인 통영 앞바다까지 왔지만,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독일에서 열린 주요 20개국(2017년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부부는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조작 사건에 연루돼 고국에서 추방된 뒤 독일에서 고향인 통영을 그리워하다 숨을 거둔 작곡가 윤이상의 묘지에 고향에서 가져온 동백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음악에서는 20~21세기를 통틀어 5대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다는 윤이상
통영에서는 선생의 음악 세계를 기리는 뜻을 담아 음악제와 기념사업 등을 앞으로도 진행할 것이라고 한다.

통영국제음악당은 예술의 바다 위에 떠있는 자유의 날개를 형상화한 건축물로서 품격과 즐거움이 공존하는 독창적인 음악당을 구현했다고 한다.
클래식 전용 음악당이라는 전문성과 통영시민의 문화적, 예술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공공성을 동시에 갖춘 남해안시대의 문화메카로 거듭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앞으로 세계적인 음악제를 위한 메인 무대이자 문화 관광도시 통영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통영국제음악당은 콘서트홀, 다목적홀, 강의실 등 통영국제음악제와 TIMF 아카데미 등 다양한 음악프로그램을 시즌별로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공연이 없어 관람은 할수 없었지만 바다를 배경으로 차한잔할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는것도 괜찮지 싶다.
장대비가 오는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