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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제8구간(아랫삼승령-독경산-창수령-울치재-OK목장 )

by 명산 김승곤 2008. 8. 22.

★낙동정맥 ★

낙동정맥제 8구간(아랫삼승령-OK목장)  

  

 

1.산행일자 : 2004.1.11(일요일) 

2.날    씨 : 맑음

3.참 가 자 : 인터넷 영남알프스 10명 

4.산행구간 : 아랫삼승령-독경산-창수령-울치재-OK목장 

5.산행거리 및 소요시간: 17.8km

         

6.구간별 거리 및 소요시간

 아랫삼승령[임도]-(2.2km/44분)-쉰섬재-(7.8km/2시간34분)-독경산-(0.9km/15분)-자래목이/창수령/918지방도-(3.6km/1시간07분)-울치재-(3.3km/1시간8분)-OK목장 

 

7.코스별 산행시각  

아랫삼승령(09:50)→688m(화산봉)(09:57)→718.4m(10:23)→쉰섬재(10:34)-저시재(10:47)→706m(10:56)→713봉(11:07)→714봉(11:17)→서낭당재(11:34)→645m(11:40)→지경/670m(11:56)→임도(12:28)→독경산(13:08)/식사(13:35)→창수령/자라목이(13:50)→울치재(14:57)→527m(15:04)→당집(15:09)→710m(15:50)→OK목장 갈림길(16:00) 

 

울산

어둠을 가르며 미니버스는 태화호텔앞을 출발 신복로터리를 지나 천상,그리고 언양을 둘러

오늘의 목적지인 아랫삼승령을 향해 출발한다.

경주,흥해를 지나 영덕에서 잠시 휴식후 버스는 다시 출발 진보를 지나 영양삼거리를 지나 날머리 차선을 확인하고 아랫삼승령 가는 길목인 가천리쪽으로 들어 간다.

 

지난번에 어두워 주변을 확인할수 없던 마을의 면면을 볼수 있었는데 곳곳마다 지난 매미의 영향인지 폐허가 되어 있는 마을이며 그리고 다리는 온데 간데 없고 아스팔트는 개울로 밭으로 나뒹굴고 있지만 어디 하나 손길이 닿은곳은 전무하고 교통로인 임시도로만 내었을뿐 말그대로 엉망진창이다.

 

18km 40여분동안 임시도로등 포장 혹은 비포장도로를 달려 저시마을 입구인 삼거리에서 아랫삼승령으로 오른다.

저시마을 경북에서도 최고의 오지 83년도에 전기가 들어 왔다는 저시마을에도 몇가구의 다정스러움이 엿보이는 전형적인 촌이다.

 

09:40 아랫삼승령도착

간단히 준비운동과 함께 오늘의 산행설명과 함께 출발시킨다.

 

09:50 출발

아랫 삼승령을 뒤로하고 안부로 들어선다. 

완만하던 능선이 쌓여있는 낙엽과 함께 가파란 오르막이 시작되고 있다. 

참나무로 어우러진 봉우리, 초반이라 금새 688m,화산봉에 도착한다.

 

09:57 688m,학산봉

한적한 시골 저시마을의 풍경이 냇가를 주위로 터를 잡은 주택들이 평화로워 보이고  낙동정맥은 왼쪽으로 돌아서 내린다.

완만한 내리막을 내려서서 안부를 지나 나즈막한 무명봉에 쥔장도 알수 없는 무덤이 있는 봉우리를 지나니 왼쪽으로는 백청리 허리골이라는 마을과 함께 안부에 도착하는데 지도상의 아래 허리재이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이 시작되며 오르고 또오르니 고도을 점점 높여 감을 느낀다.

여전히 왼쪽으로는 몇 되지 않은 집들이 앉아 있는 가운데 고도를 높여 가더니 오늘의 최고봉인 718.4m에 올라선다.

 

10:23 718.4m

718고지라지만 무엇하나 기념될만한 표시도 없이 그져 참나무 로 주위를 에어싸고 있고 멀리 일월산이 눈에 들어 온다.

잠시 휴식후 왼쪽으로 돌아서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 진다.

그리고 벌목지대를 지나 안부인 쉰섬재에 도착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10:34 쉰섬재

백청리 잦나무골과 저시마을을 연결하는 재로서 희미한 산길이 열려져 있지만 다닌듯한 흔적이 거의 찾을 수가 없다.

쉰섬재를 떠나 완만한 오르막에 무명봉을 지나 능선 분기점이 있는 무명봉을 오르니 또 하나의 봉우리가 앞을 막고 있다.

넓은 능선의 봉우리를 따라 왼쪽 사면으로 살짝 돌아선 정맥 마루금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서니 우측으로의 소나무밭의 안부에 에 도착한다.

아마도 지도상의 저시재로 판단해보지만 뚜렸한 이정표가 없는 관계로 그냥 출발한다.

다시 안부를 지나 봉우리에 올라서니 딸기나무 인듯한 잡풀들로 가득한 봉우리를 넘는다.

그리고 안부까지 이어지는 딸기나무, 아마도 여름철이면 많은 정맥꾼을 피곤하게 만들 것 같다.

다시 완만한 봉우리를 올라서 능선을 내려서니 아마도 재인듯한 안부 사거리에 도착하는데 아마도 백청리 큰골마을과 무창리 지무실을 연결하는 옛 고개인듯한 길인데 지금은  낙엽이 많아 희미한 길 흔적만 남아있다.

그리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다.

 

요즘들어 잠시 잠시 내가 왜 산을 타고 있는건가에 대해서 스스로 자문해본곤 하지만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지난 대간 산행때도 그러지는 않았는데...

더구더나 오르막을 오를때면 더욱더 간절해진다.

무덤을 이장 한건지 아니면 다른용도로 쓰였는지 낙엽에 덮인 구덩이와 함께 지도상에 706고지에 오른다.

그리고 곧장 내려서서 안부를 지나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니 713고지를 벗어나 안부인 옷재에 도착한다.

특별한 흔적없는 옷재

그냥지나쳐 오르 내리막을 따라 무명봉을 두 개 넘어니 열십자 모양의 웅덩이를 지나 잡풀이 무성한 714고지에 올라선다.

 

11:17 714m

낙동정맥의 지능선이 분명한 714고지 왼쪽으로 내려서니 급경사의 내리막이다.

바위돌과 함께 어우러진 마루금

2~3분여 내려왔을까 길이 두갈래로 연결되어 있다.

희미하게나마 왼쪽에는 길과 함께 여느 산악회의 시그널이 붙혀 있지만 발자국이 없는걸로 봐서 선두는 오른쪽 방향으로 잡고 내려 간게 분명했다.

물론 오른쪽 역시 여느 산악회 시그널이 나무에 걸려 있고 발자국의 흔적은 오른쪽 길따라 향하고 있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알바한다는 714고지 내리막길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서니 시그널이 줄줄이 붙혀있고 다시 급경사의 내리막을 내려서니 선두는 어디로 갔는지 볼수가 없는데 안부까지 내려서니 다른 방향에서 소리가 들린다.

알바했구나.....

잠시 기다렸다 같이 출발한다.

오른쪽에는 크나큰 전나무들이 줄을 지어 서있고 왼쪽에는 백청리 저수지를 돌아서서는 보림리 마을로 들어선다.

그리고 왼쪽 마을들의 눈요기와 함께 모처름 선두와 같이 나란이 걷는다.

그리고 주인도 모르는 무덤을 지나니 길이 선명한 서낭당재를 만난다.

영양 무창과 영덕 창수면 백청리를 잇는 연결된 길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 흔적이 보인다.  

 

11:34 서낭당재

다시 출발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니 지도상의 645고지에 올라선다.

참나무와 잡목들로 가득한 645고지 그냥 넘어 간다.

그리고 무명봉을 오르길 두어번 넘어니 지도상에 지경이라고 쓰여진 지경에 도착한다.

완만한 것 같지만 오르는 만큼 힘이 드는건 사실이다.

지경은 영덕 창수면과 영양의 군경계로 넓은 능선의 봉우리이다.

지경을 떠나 내리막길을 따른다.

왼쪽에는 지난 매미영향인지 크나큰 전나무들이 줄을 지어 넘어져 있고 안부를 지나 오르막을 오르니 오른쪽 밤나무골과 왼쪽 앞으로는 임도가 늘어서 있다.

다시 안부를 지나 왼쪽으로 급경사의 내리막을 내려서니 건너편에 독경산이 우뚝 솟아 있다.

저곳이 독경산이라 그러면 얼마 남지 않았거니 하면서 힘을 내어 본다.

안부를 지나 참나무 벌목지대를 지나봉우리에 올라서니 길이 왼쪽으로 돌아서 내려오니 임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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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 임도

지형도상 이 임도는 백청리 망성골와 영양 무창 밤남골을 연결하는 길로 아주 깨끗하다.

잠시 휴식후다시 출발한다.

아마도 곡뎡산이 존에 잡힐 듯이 있으니 그곳에서 식사하자는 말과 함께 임도 건너편으로 나 있는 완만한 길따라오르니 이곳도 마찬가지로 벌목을 마구잡이로 해놓아서 인지 가는길이 힘들정도로 나무들이 어지러이 널려있다.

무명봉을 지나 완만한 내리막을 내려서니 직진해야할 것 같은 지점에서 길이 왼쪽으로 90도 돌아서 내리다.

 

"아니 이길이 아닌데" 독경산이 건너편이 있는데.....

시그널을 찾아 왼쪽으로 돌아서서 내리니 무덤 두기가 왼쪽으로 자리하고 가파른 길따라 소나무밭으로 내려서니 이곳역시 나무들이 쓰러져 가는길을 막고 있다.

넘어진 나무 밑으로 내려서니 소나무 숲으로 우거진 완만한 능선이 이뤄져있고 이를 벗어나니 완만한 봉우리에 올라선다.

그리고 다시 안부를 지나 짧지만 급한 오르막을 오르니안부가 나타나더니 비교적 잘 갖추어진  處士 眞城李公 椿永之墓라고 쓰여진 무덤 3기를 지난다.

그리고 안부로 내려서서는 독경산 오르막이 하루를 힘들게 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독경산 정상(683.2m)에 올라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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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8 독경산 683.2m

깨끗하게 도색된 헬기장과 한쪽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삼각점과 산불감시초소만이 독경산을 대신하고 있다.

멀리 일월산의 인공건조물이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있고 주변 올망졸망한 산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따스히 찾아드는 햇볕을 거울삼아 기지고 온 진수 성찬을 꺼집어 낸다.

김치, 두부, 멸치, 깍두기, 김, 등

 

13:35분 식사를 끝내고 오늘의 종착지를 향하여 발품을 팔아보기로 하고 독경산을 떠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리막

완만한 능선분기점인 650봉을 지나 왼쪽으로 꼬불꼬불 오르는 창수령 도로를 내려다 보면서 

내리막길 따라 내려서니 창수령에 내려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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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0 창수령

부산에서 오셨다는 어느 기사분 안동가는 길을 묻는다.

창수령은 영덕군 창수면과 영양군 영양읍을 연결하는 918번 도로로 생긴 모양이 자라의 목 같다하여 자래목이라 부르기도 한다는데.....

고갯마루엔 "낙동정맥 영양5구간"안내판과 어지러이 이동통신 안테나도 세워져 있다. 

 

13:55 다시 출발

이동통신 뒷편  능선마루로 올라선다.

완만한 오르막이지만 오르막이 멀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만큼 힘이 빠진다는 뜻이다.

여전히 왼쪽으로는 창수령 오르는 차들로 엔진소리를 더하고 있고 오른쪽으로는 잡나무들로 꽉쳐여 있다.

드뎌 무명봉에 도착한다.

불과 얼마 올라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힘들수가....

잠시 휴식후 다시 출발을 한다.

능산을따라 20여m지나니 왼쪽으로 시그널이 걸려 있다.

그리고

내리막 상석에 울진임씨지묘라고 쓴 무덤을 지나 안부에 내려 선다.

힘들게 올라 왔던 그길 다 까먹어 버린셈이 되고 말았다.

다시 오르막길

그리고 완만한 오르막 길주위로 돌이 쌓여져 있다.

웬돌일까....

성터도 아닌데....그러면 옛날에 이곳에 사람이 살았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잡나무들이 무성한 길따라 무명봉에 올라선다.

그리고 길은 왼쪽으로 심하게 꺽이면서 건너편에 힘들게 올라오던 생각을 하면서 급한 내리막을 내려 선다.

잡풀과 딸기나무들로 이뤄진 능선을 따라 내려서니 무덤을 하나 만나는데 김해김씨지묘 를 지나면서 능선은 완만해지면서 오른쪽에 인동장씨지묘 를 오른쪽에 두고 소나무밭을 지나 여전히 전나무들로 가득찬 평지 능선을 걸어 본다.

완만한 오르 내리막 길을 따라 내리막길에 무덤을 지나면서  절개지와 함께 통나무계단을 내려서니 정맥의 마루금을 끊는 울치재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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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7 울치재

울치재는 영덕군 창수리와 영양읍 양구리로 이어지는 임도로 비교적 깨끗하게 정비 되어 있다.

그러면 여기서 울치재에 관한 사연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옛날에는 석양(夕陽)에 이 재를 넘으면 반드시 그 나그네는 참상을 입었다해서 울고 넘는다는 뜻으로 

울티재(泣嶺)라 했다 하며 저녁만 되면 이 재 넘어 가기를 꺼려했다 한다.

어느날 원님이 오다가 길에서 풀벌레를 보고「저 벌레가 무슨 벌레냐?」하고 물었다. 

「범아제비입니다.」하고 하인이 대답하였다. 

조금 더 오다가 호랑이(범)을 만났다. 

겁이 났으나 정신을 차리고 「내가 오다가 자네 백부(伯父·阮丈)를 만났으니 길을 비켜라」하니 범(호랑이)이 길을 비켜주어 위기를 모면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리고 또하나 

울티재는 영해 고을의 교통의 요충지로 영해 고을을 오고가는 대소의 관리들이 처음 이 고개를 넘으면반드시 죽음을 당하곤 하였다는데....

어느날 간이 큰 손순효(孫舜孝)가 경상도 감사가 되어 울티재에 내려와 주위를 살핀 다음 오래된 나무 한 그루를 베고 글을 쓰기를 다음과 같이 하였다고 하는데.

 

汝揖華山呼萬歲 我將淪命慰群氓 

個中輕重誰能會 白日昭然照兩情 

너희들이 공손히 화산곡(華山曲)을 만세토록 부른다면 내 장차 임금의 명을 받아 너희들을 위로하리라. 

개개일들의 가볍고 무거움을 누가 능히 헤아리랴 밝게 비추는 햇님이 우리 양 충정을 비추어 주지 않은가 

 

그러자 바로 괴이한 일들이 없어지고 이후로는 흉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울티재는 괴이한 일들이 없어졌다고 하여 파괴현(破怪峴)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기록에 의하면 조선 태조 2년(1393) 5월에 전조 고려 왕씨들의 후예들을 영해로 옮겨 살도록 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의 후예들이 점차 장성하면서 조선 왕조에 대한 반감으로 범아제비 혹은 산적 등으로 변장하여 새왕조의 관리들을 살해하여 선조들의 원한을 갚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선 왕조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오래 방치하면 구왕조의 부흥운동이 일어 날까봐 병조좌랑 등을 역임한 손순효(1427∼1497)를 경상도 관찰사(감사)로 삼아 이를 토벌하게 하였는데, 이 때가 성종 16년(1485)이었다.

 

잠시 서서 목을 축인다음

울치재를 뒤로 하고 올라서니 이곳역시 마찬가지로 소나무들이 뿌리를 드러낸채로 누워 갈길 바쁜 나그네를 막고 있다.

그리고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서니 지도상의 527고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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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능선을 따라다 왼쪽사면으로 급경사를 이루더니 당집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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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 당집

시멘 볼럭으로 울타리가 쳐져 있고 태극무늬를 한 문에는 자물쇠가 잠겨 있어 보는이로 하여금 을씨년스럽게 하고 있는게 도대체 이런게 왜 필요 한것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당집을 지나 완만한 봉우리 하나를 왼쪽사면으로  비켜 지나면서 소나무 밭을 지나니 조그만한 지류를 만나는데 불과 몇m위에는 여전히 능선이지만 아마도 홍수가 나서 떠내려간건이려니 생각하면서 다른 능선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안부

오르막이다. 그리 급한 오르막은 아니지만 ....

오른쪽으로는 917번도로인듯한 길이 산 중턱을 넘어 오고 있고 이곳에도 마찬가지로 소나무의 송진을 벗긴 흉상으 로 그냥 그대로 남아 있다.

5분여 오르막을 오르니 길이 정상으로 오르질 않고 왼쪽 사면으로 비켜 나가더니 급경사의 내리막을 지나 안부에 도착한다.

그리고 완만한 오르막

세 개의 무명봉을 오르 내리니 지도상의 마지막 봉우리 710고지에 도착한다.

평지 같은 넓은 능선 참나무들의 잔치인양 잘자라고 있다.

잠시 휴식후 평지를 걷는다.

그리고 안부에 내려서니 넉엽으로 희마한 길따라 시그널을 하나 붙이고 들어서니

OK목장 고랭지 채소밭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건너편에도 시원스레 펼쳐진 OK목장 삼거리에 우리가 타고 갈차가 눈에 보이고 오른쪽 아래에는 OK목장 축사가 들어서 있다.

다시 출발 밭가장자리를 따라 임도길로 접어드니 오늘의 목적지인 삼거리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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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 OK목장 삼거리 도착

후미들도 속속 도착 선두와의 차이를 3~40분으로 단축 시키면서 다음에 있을 낙동 아홉구간

이곳에서 황장재까지를 선전 포고 한다.

그리고 오늘도 하산주와 함께 떡국에다 만두를 넣은 10인분의 국은 순식간에 동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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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흐르는 길따라 한잔 한잔 친구가 좋아 한잔 산이 좋아 한잔 하는 사이 차는 영덕을 지나 경주를 통과 울산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