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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210508 지리산 둘레길 1구간(주천-운봉)

by 명산 김승곤 2021. 5. 10.

지리산 둘레길 1구간

1.구간   : 주천-내송마을-회덕마을-노치마을-가장마을-행정마을-운봉읍
2.일자   : 2021. 05.08 (토요일)
3.거리   : (오룩스-15.25km, 공식거리-14.7km)

             주천면 – 내송마을(1.1km) – 구룡치(2.5km) – 회덕마을 (2.4km) – 노치마을(1.2km) – 가장마을(2.2km) - 

             행정마을(2.2km) – 양묘장(1.7km) – 운봉읍(1.4km)
4.동무   : 하진수님 부부,아내

◎ 남원 주천 안내 센터(09:20)
◎ 내송마을(09:50)
◎ 개미정지(10:00)
◎ 구룡치/ x600m (11:25)
◎ 회덕마을(12:30)
◎ 노치마을(12:50)
◎ 가장마을(14:00)
◎ 행정마을(14:30)
◎ 양묘장(15:00)
◎ 운봉읍/24번국도(15:30))

 

어제 이곳에 오면서 황매산 산행을 했었다.

뭐 짧은 거리이지만 그래도 산행은 산행이다.

그리고 함양에서의 맛집 양지식당 돼지머리 수육과 소주.....

또 집에서 저녁늦게까지 낮게 마신 맥주등 술이 아침에는 영 편안치가 못하다.

 

함양에서 이틀째다.
바람이 차다.
기상청 날씨는 6도를 가르키고 있고 
오늘 예보는 20도까지 오르내리는 맑은 날씨이지만 온종일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나쁨으로 황사까지 덮친다고 한다.

지리산 둘레길을 시작하는 첫날인데 이게 왠 황사인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수는 없지 않은가 싶다. 


샌드위치와 요구르트 등 과일로 끼니를 해결하고 

어제 황매산 600고지에서 채취한 쑥을 을 함양읍내 방앗간에 맡기고 출발한다.


네비는 함양에서 지리산 둘레길 1구간 출발지점인 주천 지리산 둘레길 안내센터까지 약 37km,  1시간의 소요시간이 찍혀 나온다.
물론 인월 운봉을 지나서....

 

5월 8일.......
함양에서 24번 국도를 따라 인월 운봉으로 들어 서는데 모내기가 한창이다.
우리가 사는 울산이나 경상도  남부지역은 이제 못자리를  하고 있다는데...

그런데 진수형님은 이곳은 늘 모내기가 빠르단다.

어릴적 함양읍내 모내기 할때쯤이면 이곳은 모내기가 끝나고 함양에 도와주러 온다고 한다,

아마도 고도가 높아 그런게 아닐까 싶다고  한다.
하여 이곳 고도를 보니 530~540m이다.
그러니 날씨는 차갑지만  빨리 모내기를 해서 수확을 해야하는 그런 문제도  있겠다 싶다.


그러는 사이 차는 여원재를 지나는데...
언제적 이야기인가.
여원재
2002년 백두대간을 출발하면서 04시 성삼재를 출발하여 만복대 정령치 그리고 오후에 들어갈 노치마을을 지나 수정봉 그리고 여원재까지 
거진 9시간 산행후 도착한 첫구간 백두대간 
그 여운이 아직까지 있는데 오늘은 차로 그 여원재를  넘어간다.

지대가높은 고원지대라 운봉쪽은 그냥 평범한 고갯마루지만 남원쪽에서 보면 상당한 고겟길이다. 

210508 지리산둘레길 1구간.gpx
0.24MB

09시쯤 되었지 싶다.
남원시 주천면 지리산 둘레길 안내센터(전북 남원시 주천면 외평2길 5 / 063-930-0800) 앞 주차장이다.
굳게 닫겨져 있는문......
코로나로 인하여 출입을 통제한다며 손소독하고 그리고 초인벨을 눌러라는 안내문이다.
그리고 문을 열어주면 열이 있으면 들어오지 못한다며 열을 체크하고 인적사항을 기록하고 일행이 있으면 혼자만 들어 오라 이야기다,
참 지랄도 가지 가지다 싶다.
스템프 두권를 구입(20,000원)하고 지리산 둘레길이 처음이라니 약을 팔아야 한다며 한참을 설명이다.
혼자들어나 둘이 들어나 하는 이야기는 매 한가지일터....
어쩨튼 스템프를 구입하여 주촌면 지리산 둘레길 안내센터를 출발한다.

지리산 둘레길(jirisantrail.kr)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면
지리산 둘레길의 출발은 2004년 생명 평화를 이 땅에 뿌리고자 길을 나선 순례자들의 입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지리산 순례길이 있으면 좋겠다는 제안에 그 제안이 다듬어지고 구체화된 게 지리산둘레길이라고 한다.
그리고 2012년 지리산둘레길이라는 아젠다 선언 하면서 지리산 5개 시군을 이어주는 길과 함께 길을 떠나는 이들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벅수라는 장승과 함께 지리산 둘레길이 이어져 오고 있는게 사실이다.
현재에는 21구간 20개읍면, 100여개 마을 지난다고 한다.
2014년부터 순환로를 포함해 22구간 285km의 장거리 도보길이라는 이야기다.

오늘 그 첫걸음을 시작한다.

시작이 반이라 이미 반은 한셈인가..

누구나 다 그러하듯
여기부터 남원 지리산 둘레길 주천-운봉 제1구간시작점입니다.라는 안내판 앞에서 인중삿을 남긴다.
운봉까지 14.7km라는 벅수 장승도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그옆에는 원터마을(외평)의 유래까지 안내문을 세워 놓았다.
원터마을(외평마을)
약 600여 년 전 10여 호의 마을을 이루었으나 농업용수가 마땅치 않았으나, 용궁마을에 장안저수지를 만들면서 식수 및 농업용수가 해결되어 마을이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고려시대부터 숙성치를 넘어 구례군 산동면(당시는 남원부) 원달리로 통하는 길이 있었는데, 응양에서 말을 갈아타고 농협 창고 뒤편에서 쉬어가는 곳이어서 원터거리라 하였는데, 경치가 수려하여 감탄을 자아낸 곳이라 전한다.
출발이다.

지리산둘레길 홍보관
물레방아가 상징하듯 돌고도는 인생을 벗삼은듯 하지만 코로나 때문인지 뭐때문인지 몰라도 문은 굳게 닫혀 있다.

비부정이라는 음식점이다.
沸(끓을비)釜(가마부)亭(정자정)....
직역을하면 가마을 끓이는 정자 ?
안내판을 보면 그 옛날 그 길목에 주막이 하나 있었네
전남지방 경남일부에서 한양가는 유일한 옛길 전남 경계, 숙성치를 출발하여 원터거리, 솟보거리, 목넘어 고개를 지나 응냥마필이 쉬어 가는 역전을 거쳐 한양을 가는길목인 솟보거리주막이라고 한다.
그 솟보거리주막이 비부정 식당이라는 이야기다.
신라시대에는 함양을 거쳐 경주로 통하였고
조선시대에는 한양으로가는 유일한 길로...
지금은 그자리에 沸釜亭(비부정) 이라는 쉼터가 자리잡고 있으니 그 지운을 다시한번 길가는사람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다.라는 안내문이다.
뭐 들어 와서 음식시켜먹고 쉬었다 가라는 이야기다.
다시 지리산 둘레길은 도로를따라 이어진다.
갓길에 자라는 소나무가 퍽 인상적이다.

내송마을 들어 가는 입구다.
지리산 둘레길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왼쪽에 국수집도 있다.
오가는 지리산 둘레꾼에게도 좋은 쉼터 역활을 할것 같다는 생각이다.
허지만 우리는 이른 시간이고 해서 그냥 지나친다.
마을 들어가는 길목에 수례국화가 한창이다.

내송마을 이다.
가가호호 집꾸미기에 대한 노력이 엿보이는그런 모습들이 곳곳에 나타난다.
안내문을 보면 내송마을은 약 600여 년 전 한양 조(趙)씨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여 그 후로 경주 김(金)씨, 서산 류(柳)씨 등 여러 성씨들이 차례로 들어와 30여호 마을을 이루면서 주위의 비옥한 농토와 산림을 토대로 부유한 마을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에는 이곳 출신 조경남(趙慶南)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고 한다.
가는길에 심겨져 있는 고추묘종이 상당히 간격이 좁다.
그리고 줄을 쳐서 고무줄을 걸어 놓았는데 이개뭘까라는 제시어가 한참을 설왕설래 했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마을주민이 한탐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뭐가 잘못되었는가...

개미정지라는곳이다.
그러니까 안내지도를 보면 스템프 찍는곳이 있는곳이다.
그리고 한쪽 옆에는 이곳 개미정지에 대한 설명까지 세워 두었다.
내송리 서어나무 숲. 정지는 쉼터를 말한다.
시원한 그늘과 의자가 있어 쉬어가거나 도시락을 먹기에 좋다.
옛날 남원장을 보러가던 이들도 무거운 보따리를 풀고, 마을 사람들도 나뭇짐을 잠시 내려놓고 쉬어갔을 것이다.
개미정자로 일컫는 이곳은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다 여기서 잠이든 의병장 조경남의 발을 개미들이 물어 뜯어 위급함을 알렸다 하여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또한 이곳 서어나무 쉼터는 재너머 지리산 속 주민들이 남원장을 다녀갈 때 이고 지고 가던 짐보따리를 내려놓고 옹기종기 쉬어가던 옛주막터이기도 하다.
우리도 쉬어간다.
어짜피 첫구간만 하려면 그리 바쁠이유도 없다 싶다.
가다쉬다 그러기로 한것이다.
개미정지를 출발하면서 가파른 때론 완만한 산길이 이어지는데.....

아마도 지난해 호우로 인해 계곡마다 많은걸 휩쓸고 지난듯해 보인다.
하지만 마사토라 그져 눈가람에 불가하게 보인다.
주변에 널려 있는 통나무를 그냥 쌓아 놓지만 말고 흙속 집어 넣어 흙막이용으로 시용햇으면 좋겠다만 마사토에 풀씨를 뿌렸는지 새싹이 나오긴 나오고 있지만 아무리 봐도 불안 불안해 보인다.

솔정지
자료를 보면
솔정지는 20여년 전만 해도 나무하러 지게를 지고 가다가 고개를 오르기 전에 땀을 식히고 하던곳이라 한다.
주천 들녘과 멀리 숙성치와 밤재를 바라보던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던 곳이리하여 솔정지라 했다 한다.
설에 의하면 정유재란 당시 숙성치를 넘어 남원성을 향하는 왜군을 향해 조경남 장군이 활시위를 당겼던 곳이라고도 한다.

중간 중간 공사중이다.
지리산 둘레길 공사중인 분과 잠시 소형포크레인 임대애 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본다.
하루에 50,000원이면 빌릴수 있다 아니다 남원에는 더줘야 한다.
소형은 면허가 없으도 빌릴수 있으며 조금만 교육을 맏으면 모두가 쓸수 있는 장비라 요즘은 농가에서 주로 이용을 많이 하는게 사실이다.

거시기모습을 한 소나무를  어루 만지고 있다. 

구룡치라고 한다.
해발 600고지다.
카메라 삿에 들어온 아이는 송탄에서 어머니 아버지지 때문에 왔다는 8실 13살아이들이다.
얼마나 잘가는지 그 옛날 우리아이들이 생각난다.
지금은 부모품을 벗어나 있지만
조그만할때 전국적으로 돌아 다니지 않은산이 없을정도로 많이 데리고 다녔는데...
하지만 요즘 그때 갔었던 이야기를 해보며.....
한낮 부모의 욕심이었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하이라이트구간이지 싶다.
구룡치(x600m)까지 고도차를 극복 해야하는 그런 구간...
서울에서 오신분이야기인죽....
이게 지리산 둘레갈 맞냐고.........

구룡치는 달궁마을에서 남원장을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길목이었다고 한다.
달궁마을 주민들은 거리가 멀어 남원 장에 가려면 2박 3일에 걸쳐 다녀와야 했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이길을 이용하는 마을 주민들은 해마다 백중 (음력 7월 15일) 이 지나면 마을별로 구간을 나누어서 길을 보수해서 이용해 왔다고 한다.
한참을 쉬었다 간다.

아름드리는아니지만 주~욱뻗은  소나무들의 군락지이다. 

사랑나무라고 한다.
안내판을 옮겨오면 사랑은 하나이어라
두소나무가 서로 접목된 연리지 나무는 일심동체로 남녀 이성간의 화목은 물론 깊은 애정도 그려주고 있으며 또한 비상하려는 용의 형상을 지니고 있어서 이 명품 용소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에 남기거나 소원을 빌면 모든이들의 행운과 건강이 오래오래 이어진다고 전해오고 있다고 한다.

지리산 둘레길에 홍보용 광고성 안내판을 한참이나 보고 간다.
뭐 그렇다고 둘러볼것은 아니지만.....

사무락다무락이란 곳이다.
작은 돌탑 밭에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있는 곳이다.
다무락은 이곳 사투리로 담벼락이라는 뜻. 사무락은 바람을 뜻하는 ‘소망(所望)’이 변한 말이다. 한마디로 ‘소망을 비는 돌담’이다. 길손들은 이곳을 지날 때마다 돌탑에 돌을 하나씩 놓으며 소원을 빈다. 늙은 소나무는 한 발로 서있는 학처럼 외로 꼬고 먼 산을 보고 있다. 그 시선 끝엔 지리산 서북능선 산들이 그림처럼 겹쳐있다.

회덕마을

해발 530m의 덕치리로 내려선다.
우천시 우회하라는 계을을 건너는데 노란창포가 눈길을 끈다.

덕치리 마을이다.
그러니까 회덕마을이다.
임진왜란 때 밀양 박(朴)씨가 피난하여 살게된 것이 마을을 이룬 시초라고 한다.
원래는 마을 이름을 남원장을 보러 운봉에서 오는 길과 달궁쪽에서 오는 길이 모인다고 해서 모데기라 불렀다 한다.
그 뜻은 풍수지리설에 의해 덕두산(德頭山), 덕산(德山), 덕음산(德陰山)의 덕을 한 곳에 모아 이 마을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회덕마을은 평야보다 임야가 많기 때문에 짚을 이어 만든 지붕보다 억새를 이용하여 지붕을 만들었으며 현재도 두 가구가 그 형태를 보존하고 있다.

 

덕치리 초가 샛집이다.
도로에서 카메라로 당겨서 잡았다.
원형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제35호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이 초가집은 억새풀로 지붕을 이은 샛집으로 조선시대 일반가옥의 형식을 따라고 있다
1895년 박창규씨가 처음 지었으나 6.25때 붕타 1951년 다시 지었다고 한다.
안채와 사랑채, 헛간채등으로 이루어진 이집은 이지역에서도 구석집으로 부른다고.....
그리고 집이 있던 자리는 원래 논이었으나 터가 좋다는 한풍수가의 말을 듣고 이곳에 집을 지었다고 한다.

길가에 철쭉이 화려하게 피어나고 그 너머로 지리산 만복대와 정령치 바래봉까지의  서북능선 산줄기가 마루금을 이어가고 있다.

노치마을 이 보인다.
백두대간을 지나는 노치 마을이다.
조선초에 경주 정(鄭)씨가 머물러 살고 이어 경주 이(李)씨가 들어와 살게 되어 지금의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노치마을은 해발 500m의 고원으로 서쪽에는 구룡폭포와 구룡치가 있으며 뒤에는 덕음산이 있고 지리산의 관문이라고 말하는 고리봉과 만복대를 바라보고 있으며 구룡치를 끼고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마을에서는 마을 이름을 “갈재”라고 부르는데 이는 산줄기의 높은 곳이 갈대로 덮인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라고 한다.
현재는 백두대간이 관통하는 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노치마을은 고리봉에서 수정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위에 있어, 비가 내려 빗물이 왼쪽으로 흐르면 섬진강이 되고 오른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이 되는 마을이다.
또 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 샘으로 깨끗한 샘물인 노치샘...........
대간꾼이라면 많이도 입에 오르 내리는 샘터로 회자되고 있는게 사실이다.
옛날에 이곳에 호랑이가 와서 물을 먹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이지만

마가목

800고지 이상에사만 자라는 마가목인데 요즘은 가로수용도 많이 나온다

매발톱

노치마을 가정에도 사랑나무를 키우고 있다.
마치 아주머니가 나무를 돌보고 있어 5분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어린나무부터 저렇게 키웠다고 한다.
무슨 자랑이라고..
그런데 유별시렇게 우리나라사람들은 곡간을 좋아한다고 한다.

나무는 힘들어하는데 그 고통을 알까 싶다.

노치마을

그러니까 백두대간길에 민가 담장에 그려진 그림이다.
이길로 올라가면 백두대간 수정봉 여원재로 이어질것이다.

백두대간...............

노치샘 수정봉 가는길

덕산저수지이다.
1945년 축조 되었다고하는데 농사용이라고 한다.
그런데
모내기가 한창인지라 저수지물도 많이 줄었다.

지리산 둘레길이 때로는 산으로 그리고 마을로 그리고 논두렁길로도 이어진다.
참 정겹다.

운봉뜰이다.
분지 타입인 운봉마을
해발 500여m의 고원지대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모내기를 끝내가고 있다.

동복오씨 묵제공파  우암공가족묘원이다.

오씨문중에서 만든 심수정이라고 한다.
그 앞 바위에 새겨진 글을 잠시 옮겨온다
일부지만.............
지리산 높은기상
만복대 푸른정기
천만년 번창해갈
풍성한 삼밭골에
천하절경 우러르며
터를잡은 문중묘원
.............

가장마을이다.
느티나무가 드리워진 마을..........

마을 주민들의 사랑채인 정자는 문을 달아 겨울에도 사용할수 있게 만들어 두었다.

그리고 하우스 산업이 유행인지 노는땅 비어 있는 땅이 없을정도다.
가장 마을은 풍수지리에 의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화장을 하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가장리(佳粧里)라 불렀다 한다.
지금은 들녘에 농사짓는 움막터를 뜻하는 농막장(庄) 자를 써 가장리(佳庄里)로 쓰고 있지만....
마을 사람들은 옥녀봉 아래에 옥녀가 베를 짜는 옥녀직금의 천하명당이 있다고 믿고 있다.
300여 년 전 이곳에 처음 들어온 사람은 동복 오(吳)씨와 강릉 유(劉)씨라고 하며 그 후 창녕 조씨와 김씨, 박씨 등이 입주하게 되었다.
마을이 뱀 형국으로 마을 앞에 입석을 세워 뱀의 기를 눌러 마을의 액 막음을 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이고 있다.

참 재미있는 마을이다.

 

다시 길은 60번도로이 이어진다.

덕산마을 입구다.
이곳에서 도로를 벗어나 주촌천인 농로길을 이용한다.

행정마을이다.
남원의 숨은보석 10선에 속한다는 서어나무숲
행정마을에 서어나무를 심고 가꾸기 시작한 것은 1700년대 후반, 마을이 생겨난 직후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서어나무숲은 말 그대로 일상의 친구인셈이다.
또 서어나무 숲은 2000년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마을 숲’ 부문 대상을 차지한 곳이라 한다.
특히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에서 춘향이 짙은 녹음 속에서 붉은 치마를 나부끼며 한 마리 나비처럼 그네를 타던 곳이 바로 이곳이라 한다.

행정마을 표지석이 있는지점에서 지리산 둘레길은 람천 방둑길로 이어진다.

벚나무가 둑을 연결하고 있는데.
벚꽃이 필무렵 이곳을 지난다면 또 하나의 새로운 추억이 될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모내기가 한창이다.
지리산둘레길이라는이유하나만으로 일하는 저사람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길 바래본다.

산림청 남원 양묘장을 들어서는제 편백 ,전나무의 어린새삭들이 물을 머금은채 자라고 있다.
그리고 야외에는 어린 소나무도 자라고 있고....
대단위 육묘장이다.

출구는 남원 양묘사업소 바리게이트가 반쯤열려져 있는 운봉가는 엣길까지 연결 된다.

산사화 나무라 한다.
벽사나무로 울타리로 많이 활용하였다고 한다.
꽃말은 유일한 사랑과 관용이다.
전설은
옛날 어느 산골마을에 산밭을 가꾸고 사는 집에 두 아들이 살고 있었는데, 장남은 전처의 소생이었다.
계모가 장남을 몹시 미워해 남 몰래 해를 주려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남편이 오래 동안 집을 비우게 되자,
계모는 어린 장남에게 산밭 일을 시켰다.
장남은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나 매일 산에 올라가 밭을 돌보는 힘든 일을 해야 했다.
계모가 매일 설익은 밥을 싸주었으므로 어린아이가 소화를 제대로 시킬 수가 없었다.
배가 아프고 당기는 날이 계속되니 어린 장남은 날이 갈수록 몸이 마르고 수척해 졌다.
계모에게 사정해 보았지만 일도 제대로 못하는 주제에 밥투정만 한다고 혼만 났다.
배가 고파도 아파서 이제 설익은 밥도 먹지 못하게 된 장남. 마침 계절이 가을이라 우연히 밭 옆에 빨갛게 익은 산사나무 열매를 발견하고 한 웅큼 따서 먹어 보았다.
그랬더니 허기도 가시고 갈증도 없어지는 것 같아서 매일 산사나무 열매를 계속 먹었더니 아프고 당기던 배가 낫고 무엇을 먹어도 소화가 잘되어 건강을 찾았다 한다.

남원 양묘사업소 출구

지리산둘레길은 저쪽문으로 연결된다.

운봉읍

운봉 사거리....
도로변에 동편제 소리길이라 소개하고 있다.
또 운봉농협 벽면에 헛갈리게 하는 지리산 둘레길 2구간에대한 소개의 벽화...
대부분 사람들이 이곳을 1구간 끝과 제2구간 시작이라는 이야기를 하다 결국 2구간 들머리를 찾아가는헤프닝을 빚었다는 이야기라 벽화라지만 홍보성 문구는 사라져야할 부분이다.
동편재.................
자료를 보면
전라도 동부지역에 전승되는 소리를 동편제라고 한다.
전승지는 전라도 동부지역으로 섬진강을 중심으로 동편지역, 즉, 운봉·순창·구례·흥덕 지방 등이며, 웅건(雄健)하고 청담(淸淡)하며 호령조가 많은 우조(羽調) 분위기의 판소리가 특징이다.
시작이 썩 진중하고 구절의 끝마침을 되게하여 쇠망치로 내려치는 듯이 노래한다.
일반적으로 굵직한 시김새를 사용하며, 마디마디 엄성이라 하여 무거운 발성을 쓴다.
동편제 소리는 송흥록(宋興綠)의 법제를 표준으로 하여 전승되어 온 것이다.
송흥록의 소리제는 그의 아우 송광록(宋光綠)과 송흥록의 수제자인 박만순(朴萬順)에게 전승되었다.
다시 송광록의 소리제는 그의 아들 송우룡(宋雨龍)에게 이어졌고, 송우룡의 소리제는 송만갑(宋萬甲)·전도성(全道成)·유성준(劉聖俊)·이선유(李善裕)·송업봉(宋業奉)에게 전승되었다거 전하고 있다.

운봉...........
운봉은 해발 450~500m의 고원마을. 백두대간 지리산 줄기를 등에 지고 거대한 평원이 펼쳐지는 형국이다.
땅은 기름져서 부농들도 많았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운봉은 이씨 왕조의 성지였다.
고려말 이성계가 운봉에서 아지발토란 왜구를 크게 물리쳤다.
소위 황산대첩. 이 때문에 이곳을 지나는 선비들도 승전비가 있는 고을 앞에선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춰야 했다는 것이다.
지리산이 적을 막아주고 들은 넓은 운봉들판을 놓고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가 지리산을 경계로 영토다툼을 치열하게 벌였던 곳이기도 한 운봉.
그래서 운봉 주변을 둘러싼 지리산 줄기엔 산성터만 여러 개 남아있다.

지리산 둘레길은 운봉읍내를 관통해서 운봉초등학교앞에서 좌회전 하여 24번국도까지 나가야 하는데 .........
한참을 헛갈리게 했다.

농협건물 벽면에 그려진 벽화 때문에.....

운봉읍

지리산 둘레길은 운봉읍내를 관통해서 운봉초등학교앞에서 좌회전 하여 24번국도까지 나가면 서림공원입구가 지리산 둘레길 1구간의 마지막이자 2구간 출발지점이다.
한참을 헛갈리게 했다.

24번국도......................

지리산 둘레길 1구간의 마지막이자 2구간 출발지점이다.

마무리 인증삿을 담고는 2구간은 다음으로 기약하며 운봉 읍사무소앞 버스 주차장으로 옮기는데....
근처 편의점에 가서 주천으로 가는 버스가 몇시에 어디서 있느냐.....

16시15분에 운봉정류장(3-100번)에서 있다고 한다.
오전에 출발할때 지리산 둘레길 주천 안내센터네서 했던말이 생각난다,
하루에 버스 4번인가 있다고...
해서 택시타는거 나을거라는 이야기다,

지리산 2구간 출발점

지리산 둘레길 1, 2구간 벅수 장승

인증삿

여러가지 정보를 담고 오는데 헐.........
진수형님은 카카오택시를 불렀다는 이야기다.
주천까지 20여분............
약 15km구간이다.
요금 16,800원이다.
그리고 차량을 회수하여 인월의 맛집.....
산골농장 식당으로 간다.
함양사람들도 이곳으로 와서 삼겹살 내지는 등뼈감자탕을 먹고 간다고....
내부는 꼭 중국의 어느 관광지에서 본든한 내부시설 그리고 넓이....
두텁게 썰은 삼겹살.....
숙성을 했다고 하지만 삼겹살은 삼겹살이다.

도천양조장엘 둘러 전주을 구입 도천 진수형님댁으로 돌아온다,.
물론 오느길에 아침에 맡긴 떡도 찾아오고...
알맞은 기온에 불을 지펴 느지막하게 맥주로 하루일과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