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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200804 서해안 Tour 3박4일 2일차

by 명산 김승곤 2020. 8. 10.

2020 서해안 투어 3박 4일

 

1,투어 : 서해안 투어
2,일시 : 2020년 8월 3일~6일(3박 4일)
3,인원 : 10명/ (김용근/최경옥님, 하진수/정귀옥님,홍무영/박은숙,김두한/박규리,김승곤/제숙란)


● 2020년 8월 4일----------------------------------

○ 무창포 비체펠리스(09:00)
○ 그림같은 수목원(09:40)
○ 예당호 출렁다리(11:10)
○ 영성각(12:30)
○ 해미읍성(14:10)
○ 간월암(16:00)
○ 대천수산물센터(18:20)
○ 무창포 비체펠리스(20:30)


06시 리조트를 나선다.
어제저녁 느끼지 못했던 주변을 산책할겸 운동 삼아 나서는 길에 용근,진수형님, 그리고 아내까지 나선다.
누가 코를 심하게 골았는지 그덕분에 잠을 제대로 자질 못했다는 아우성 소리를 뒤로하고 상쾌한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는다.
바닷가쪽이라 습도가 많을것 같은데 건조한 산바람이 불어와 상쾌함을 느낄수 있어 좋고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안이라 느낄만큼 물이 빠지는 모습을 볼수 있어 좋고..
걸어서 좋고
운동해서 좋은 아침....
이곳은 무창포다

비체펠리스 리조트 건너편 섬은 삭대도다. 

석대도는 진도와 더불어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고도 불리는 신비의 바닷길로 잘 알려진 곳이다.
해마다 축제를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취소 되었다고 한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지는 음력 보름과 그믐을 전후하여 2~3회에 걸쳐 바다가 갈라지는 진풍경을 연출하여 무창포 해수욕장에서 석대도를 잇는 1.5km의 바닥이 드러나 이 길을 따라 석대도까지 걸어갈 수 있다.
또 바닷길 위에 드러나 있는 소라, 조개, 말미잘 등의 갖가지 해산물을 관찰하고 채집할 수 있어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또 석대도는 갯바위 낚시터로도 유명하며 백조기와 우럭, 농어 등이 많이 잡힌다고 한다.

 

옛날 구전에 따르면 아기장군이 죽었을 때 황새가 떼지어 나타나서 슬프게 울었다는 섬으로 돌로 좌대가 놓인 것과 같이 생겼다하여 석대도라 불린다고 한다.


더욱이 보령 8경의 하나로 꼽히는 무창포의 낙조가 아름다워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일년 내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빵과 과일등으로 식사를 하고 09시 출발이라며 오늘 일정과 위치를 찾아가는 네비를 단톡에 올려 놓는다.

무창포타워 다.

지상 3층(높이 45m) 규모로 지난 2015년 6월 27일에 개관했다고 한다.
무창포타워 이용안내을 잠깐 들여다보면.
관람료는 어른 2,000원(단체는 1,000원) /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이용시간은 하절기 10:00 ~ 21:00 / 동절기 10:00 ~ 19:00이며 휴무 : 매주 월요일(단,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이라고 한다.
1층은 카페, P1에는 공원, P2에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전망대에 오르면 무창포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고 하는데 개방 시간이 10시다.
일정이 시간대별로 잡혀 있는 우리로서는 그림의 떡이다.
하여 아침에 잠시 외관이라도 카메라에 담았다,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바다, 무창포해수욕장이다.

조선시대의 군창지였던 곳으로 1928년 서해안에서 최초로 개장된 해수욕장이다.
백사장 길이 1.5 km, 수심 1~2m라고 한다.
특히 백사장 앞 1.5km에 2,000 여평의 기암괴석이 있는 최적의 낚시터가 있는데 매월 사리 때 1-2일간 바닷길이 열리는 모세의 기적 이라고하는 기현상이 생긴다.
무창포해수욕장에서 석대도에 이르는 1.5km 구간에서 여름철 백중사리 때만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왔던, 이 신비의 바닷길 현상이 사실은 매월 음력 사리 때 두 차례 일어나며 일반인이 마음놓고 들어가도 안전하다고 판단,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일반인에 공개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숙소 비체 펠리스다.

바닷길이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까지 무창포 비체팰리스에서라면 모두 당신의 것이라는 비체팰리스의 광고성 문구다.http://www.beachepalace.co.kr)의 홍보란을 참고 해보면
무창포는 용평리조트가 찾아낸 서해안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즈넉한 곳이라며 만리포와 대천, 무창포로 이어지는 서해안에서 그 누구도 쉽게 발견하지 못했던 진주같은 휴양지 라고 광고 하고 있다.
푸른 빛이 넘실대는 바다와 생명이 살아 숨쉬는 갯벌,
바닷길이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까지 무창포 비체팰리스에서라면 모두 당신의 것이라는 비체팰리스의 광고성 문구다.

비체팰리스를 출발하면서.......

그림같은 수목원이다.

홈페이지 인삿말을 보면 그림같은 수목원은 자연의 순수함은 최대한 보존하면서 그것의 아름다움은 최선으로 가꾸어 나가고 있는 친자연 문화휴식공간이라는 설명이다.
단지 홈페이지에 소개해 놓은걸 보면 홍성이라는 소규모 도시에서 이런 문화공간을 볼수 있다는게 여간 다행이지 읺을수 없다는게 솔직한 내 판단 이다.
처음에는....
그런데...............

무창포 비체펠리스에서 서해안 고속도로 그리고 광천까지 어렵게 어렵게 찾아간 그림같은 수목원....
얼마나 이용을 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얼마나 자주 비가 왔는지 주차장에는 이끼가 끼였다.
뭔가 첨부터 이상하다 별로라는 생각...
근데 두한씨가 네비문제인지 몰라도 늦다,
한참이나...
나중에 물어보니 화장실까지 다녀 왔다나 어쨌다나....

하여 먼저 들어가기로 하고 8명분 티켓팅을 하는데 좀 비싸다(1인 7000원).
하여 비싼만큼 볼게 있겠지라는게 솔직한 내생각이지만 그런 기대와 희망는 오래 가지 않았다.
한마디로 실망스럽다.
이렇게 해놓고 입장료를 받고 있다니 낮이 뚜꺼운가 아니면 뭘 모르는건가
정리되지 읺는 숲속
우후죽순으로 커가는 잡목..
안내도에는 한바퀴 도는데 2시간 남짓 걸린다는데 30분으로 끝냈다.
그만큼 볼게 없다는 이야기다.

다행인건 느지막하게 도착한 두한씨는 혼자서 잠시 둘러보고 오는게 전부다
실망스럽다.
입장료가 아깝다.
괜히 왔다.
뭐 이런 의견이 전부다.
뭐 투어를 다니다 보면 다 좋을수 없지 않은가 싶지만 소개하고 싶지 않은 그런 곳이다.

다음 투어는 만인이 좋아하는 예당호 출렁 다리이다.
아침에 부여한 단톡에서의 두번째 밋션....
그런데 네비의 잘못된 지침으로 당초 부여한 예당호 휴게소 주차장을 지나 예당호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여 왜 오질 않느냐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벌어 진다.

예당호 출렁다리다.

그림같은 수목원 주차장을 출발하여 28km 30분 거리다.
계획에는 예당호 휴게소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했지만 단톡으로 부여한 네비를 이용하질 않고 다른 네비를 시용하는 바람에 차량 두대 모두가 예당 국민 관광지 주차장에 도착했다고...
그리고 왜 오질 않느냐고 오히려 큰소리다.
참 힘들다.
다시 합류한 예당호 출렁 다리 국민 관광지 주차장
코로나로 인한 열체크로 입장을 시키는데...
충남 최대 규모인 예당호가 폭우로 흙탕물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 3일 상류에 물이 불어나면서 수문 개방이 시작됐다니 수문쪽에는 온통 쓰레기섬이 되어 있다.
예당호 출렁 다리는 2017년 6월에 착공해서 2018년 말에 완공 했다고 한다.
그리고 개통은 2019년 4월 6일에 했다고 한다.
길이는 402m인데 예당호 둘레가 40km이며 지름이 2km라 402m로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전망대 역활을 하는 주탑높이가 64m이며 70kg성인 3150명을 수용할수 있다한다.
하여 부잔교까지 즉 수문까지 이용하려 하지만 402m의 예당호 출렁 다리 그져 왕복으로 끝낸다.
참 걷기 싫은 사람들...

다음 계획은 점심 식사다.
중국집 어떠냐는 질의에 모두들 오케이다.
하여 아침에 부여한 해미읍성 앞 영성각으로 네비를 맟추고 그리고 확인하고 하여 각자 출발한다.

해미읍성 영성각이다.
예당호 출렁 다리를 출발한지 34km...
약 40분 거리다.
해미읍성 진남문이 보이는 영성각
줄섰다.
해미읍성을 찾는 떠내기 손님 즉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중국집인듯...
그런데 좁은 도시에 중국집이 하나뿐인지 아니면 밋집인지 몰라도 줄섰다.
어제 장원 막국수집에 줄서서 먹었던 기억이 별로 좋지 않은 일부는 한마디씩 거든다.
그렇게 기다리길 20여분.....
두테이블에 나눠 앉았다.
그리고 입맞대로 고르는데 탕수육과 간짜장, 짜장 짬뽕.....
맛?
글쎄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곳이라서인지 코로나하고는 아무런 상관 없는듯 해보이고 짜증스러워하는 식당 쥔장과 써빙하는 사람들....
10원짜리 욕은 그냥 흘러 나온다.
정말이지 식사장소로 추천 하고싶지 읺는 그런 곳이다.
고르고 고른 식당인데....
그리고
오는길에 85억짜리 공사를 낚찰 받았다는 홍무영씨의 이야기에 모두 축하하는 자리에 이과두주도 나오고...
또 식사비는 홍무영씨가 담당 했다.
참 좋은 일이다.
코로나 정국에 가만이 있어도 돈번다는데 85억짜리라....
다같이 축하하면서 빼갈(이과두주)도 한잔씩 돌린다.
그리고 식사후 잠시 휴식겸 까페로 옯기는데 뙤약볕 아래 투어보다 이런 까페가 참 좋다.
그러길 1시간 가량....
이웃동네인 안성쪽에는 엄청나게 비를 쏟아 붓는다는데 이곳은 햇살이 났다 구름이 끼였다를 반복하고 있으니 사실 덥다.

식후 오침은 아니고 차한잔 하면서 잠시나마 휴가왔다는 사실............

해미읍성이다.

조선 시대 충청병마절도사영(忠淸兵馬節都使營)으로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읍성이다.
읍성이란 읍을 둘러싸고 세운 평지성으로 해미읍성 외에 고창읍성, 낙안읍성 등이 유명하다.
해미읍성은 조선 성종 22년, 1491년에 완성한 석성이다.
둘레는 약 1.8km, 높이 5m, 총면적 196,381m²(6만여 평)의 거대한 성으로 동,남,서의 세 문루가 있다.
해미읍성은 건립 자체가 해안 지방에 출몰하던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대비책의 일환이었으므로 왜구 침입과 관련 된 일화나, 임진왜란 직전인 1578년(선조 12) 충무공이순신이 병사영의 군관으로 부임하여 10개월간 근무한 사실 등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이후에도 해미읍성은 이 일대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있을 때마다 주요 거점으로 활용되곤 하였는데, 동학농민전쟁 때에는 내포지방에서 봉기한 동학군이 집결한 장소였으며, 패퇴하면서 관군과 접전을 벌였던 장소이기도 하였다.
그런가하면 내포지역의 한말의병들의 자취가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조선말 천주교도들의 순교 성지로도 유명하다.
천주교 박해 당시 관아가 있던 해미읍성으로 충청도 각 지역에서 수많은 신자가 잡혀와 고문받고 죽음을 당했으며, 특히, 1866년 박해때에는 1천여 명이 이 곳에서 처형됐다고 한다.
성내 광장에는 대원군 집정 당시 체포된 천주교도들이 갇혀 있던 감옥터와 나뭇가지에 매달려 모진 고문을 당했던 노거수 회화나무가 서 있다.
바로 성문밖 도로변에는 회화나무에 매달려 고문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은 신도들을 돌 위에 태질해 살해했던 자리개돌이 있어 천주교도들의 순례지가 되고 있다.
성벽 주위에는 탱자나무를 심어 적병을 막는데 이용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최근 복원 및 정화사업을 벌여 옛 모습을 되찾아 사적공원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진남문을 지나 해미읍성 을 둘러보고 15시 30분까지 이곳에 모여달라는 부탁과 함께 각자 개인 시간을 주었다.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있는 해미읍성의 정문이다.
해미읍성의 관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문루 형식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성문은 아치 모양의 홍예문이며 옹성이 없다. 진남문은 해미읍성의 세 관아문 중 유일하게 본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 아래에서 코로나19 발열 관계 등 마스크와 인적사항을 체크 하고 있다.
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을수 있지만 전염병은 과해도 누가 뭐라지 않는다.
충분히 과해도 된다는 이야기다.
진남문을 지나 해미읍성 을 둘러보고 15시 30분까지 이곳에 모여달라는 부탁과 함께 각자 개인 시간을 주었다.

해미음성

교황님이 드신 방이라고.....

마늘빵 1ea 7,000원

해미감옥
높이 5m, 길이 1,800m의 석성으로 옹벽을 두른 해미 진영 안에는 동헌 동남쪽 1,800평 대지 위에 내옥, 외옥으로 구분되던 감옥이다.
이조 시대의 감옥은 높은 담으로 둘러쌓인 울 안에 있었다.
바닥에 멍석을 깔아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말 할 수 없이 더워 한여름 매 맞은 상처는 곪기 일쑤였다.
고문과 굶주림과 갈증과 질병으로 순교자들의 몸이 쓰러져 가던 감옥은 헐려 없어지고 그 자리만 남아 있다.
1950년대에 해미 공소 신자들이 식량을 절약하여 감옥터 1800여 평을 확보하고 공소 강당을 세웠는데, 1982년에 정부가 문화재 관리 정책의 명목으로 공소 강당을 철거하고 그 터를 일부 보상, 일부 징발하고 순교 기념비만 새로 세워주었다.

호서좌영

동헌

청허정
충남의 아름다운 100대 소나무숲으로 지정(충남32)된 해미읍성 송림은 3ha의 면적에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고....
2010년 9월 태풍 곤파스로 인한 소나무숲 피해가 이루 말할수 없었으나 이곳의 소나무숲은 위기를 모면한 채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해미읍성 외곾

약 1시간 가량 해미읍성 내 감옥, 민가, 동헌,소나무 숲에 싸인 청허정
처음에 15시 30분까지 이곳에 모여달라는 부탁을 했었는데....벌써 다모여 있다.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그늘에서 그냥 저냥...했고 또
어떤이는 열심히 눈요기를 했다는 분도...있다.
하여 그냥 못간다 하여 막걸리 한잔 하시는 분도..있고
시원한 넓은 광장과 파란 잔디밭에서 교황 맞보았다는 마늘 빵을 맞보고 다음 투어 장소인 간월도를 찾아간다.

간월도다
해미읍성을 출발한지 26km 20분 거리다.
간월도 주차장에 내려 혹시나 하여 간월암을 찾는데 헉....
간월도 가는길이 막혔다.
물때를 사전에 확인했을때 이시간이면 충분히 갈수 있을거라 했는데 미처 그 시간의 오차를 확인 할수 없었던게 사실이다.
조수간만의 차로 앞으로 1시간이면 물길이 열릴거라는 용근 형님...
기다리느냐 가느냐를 두고 옥신각신하다 기다리기로 한다.
그리고 막걸리 한잔을 외치는 덕분에 간월암 가는 길목에 앉아 한진씩 마시는데 이를 본 간월암 주지 스님
절입구에서 술이라..
보기 좋지 않다며 어디서 왔냐며 들어 가서 배를가지고 올터이니 주변 정리하고 잠시 기다려 달라더니 장화로 갈아 신데니 물길을 걸어 간다.
그리고 잠시후 건너편에 있던 배를 이용 간월암에 입도 한다.
용근형님도 물길따라 걸어 가고...
너머진 간월암에서 제공한 배를 타고.....

간월암(http://ganweolam.kr/)이다.
간월암은 하루에 두 번 섬이 되었다가 뭍이 되는 절이다.
홈페이지를 보면
간월도가 예전에는 피안도(彼岸島), 간월암은 피안사(彼岸寺)라고 불린 적이 있다고 한다.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하는데 그 출처가 분명하지는 않다는 설명과 . 밀물이 들어오면 물위에 떠 있는 연꽃과 같다 하여 연화대(蓮花臺)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고려 말에 무학 대사가 이곳에서 수행 중에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우쳤다 하여 암자 이름을 간월암(看月庵) 이라 하고 섬 이름도 간월도라고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무학 대사의 득도처였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대사가 태어난 곳이 간월암에서 멀지 않은 충남 서산시 인지면 모월리 이기 때문이라는 주지스님의 말씀이다.
또 이곳에서 수행하던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李成桂)에게 보낸 간월도 어리굴젓이 궁중의 진상품이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200년 된 사철나무라고 한다.
무학 대사는 간월암을 떠나면서 짚고 다니던 주장자를 뜰에 꽂으며, 지팡이에 잎이 피어나 나무가 되어 자랄 것인데 그 나무가 말라죽으면 나라가 쇠망할 것이요, 죽었던 나무에서 다시 잎이 피면 국운이 돌아 올 것이라 예언했다고 한다.
만공스님은 죽었던 나무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을 듣고 간월암을 찾으니 암자는 간 곳이 없고, 그 자리에 묘가 들어서 있었는데, 실제 귀목나무에서 새파란 잎이 돋아나 있는 것을 보고 이곳에 머물며 중창을 위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기도 회향 전에 김씨 가문에서 묘를 이장해 가는 가피가 답지하였고, 절터를 되찾은 다음 제법 모습을 갖춘 암자를 짓고 손수 간월암이라는 현판을 써서 내건 후 종종 찾아와서 한소식을 했었던 추억의 장소가 간월암인 것이다.

잠시 주지스님과 대화가 이뤄 지는데 음료수를 한박스 내어 놓으셨다.
그리고는 이런 저런 말씀이 이어지는데 ...
관음전과 요사채, 산신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관음전에는 용이 되어 의상대사와 부석사를 지켰다는 선묘와 흡사한 형태의 불화가 모셔져 있는데 바다를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무사귀환의 염원이 담겨진 그림이라고...
그리고 수덕사의 말사로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노래로 수덕사의 여승즉 비구니사찰로 많이들 인식 한다는데 전혀 그렇지 읺다고 한다.
일출과 일몰을 한지역에서 관찰할수 있는 그런곳이며 이웃 천수만은 정주영 공법의 마지막 물막이 공사로 유명새를 탔다고 한다.
그연유를 보면 물막이 공사에 마지막 남은 270m.....
초속 8m의 급류에 4.5톤의 자동차만 한 바위를 아무리 부어도 순식간에 물살에 쓸려내려 갔다고 한다.
하여 폐유조선은 사서 물을 가득 채워 배를 가라앉혀서 마지막 남은 270m를 막아 정주영식 물막이 공법으로 서산 천수만 간척지 사업을 성공시켰다고 한다.
또무엇 보다 간월암이 유명해진 것은 1942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만공스님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천일기도를 했고 천일기도 회향 사흘 후 조국이 독립을 맞이했다고 하며 주지스님의 일갈이 이어진다.

간월암에서 일출과 일몰을 볼수 있는 곳이라.....

바닷길이 열렸다.

그리고

불과 1시간만에 정든 간월암과 주지스님을 뒤로하고 간월암을 출발한다.
목적지는 대천 수산물 센터다.
어제와 마찬 가지로 입맞대로 고르라는 이야기다.

대천 수산물센터다

 

대천 수산물센터다.
무창포와는 격이 다른 그런곳이다.
간월암을 출발한지 54km..........
약 50분 거리다.
그런데 두한씨 차가 늦다.
네비문제로 늦었다고...
하여 국물용 조개류 5kg, 낚지2kg, 보리새우2kg, 냉동 꽃게2.5kg....
195,000원 치다.
그리고 상차람으로 주류및 음료로 제법 비싼 저녁을 해결하고는 숙소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