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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남정맥

금남.호남정맥 제3구간(신광치-강정골재)

by 명산 김승곤 2009. 4. 2.

★금남.호남정맥★

금남.호남정맥제 3구간(신광치-강정골재)  

 

1.산행구간: 신광치-성수산-30번국도-마이산-봉대봉-강정골재

2.산행일자: 2004. 11. 14(일요일) 

3.산행거리 : 14.8km 

4.산행참가자:인터넷 영남알프스 회원 25명 

5.구간별 거리 및 소요시간 

 

 신광치/750고지-(2.1km/1시간10분)-성수산/1059.7고지-(3.4km/1시간15분)-709고지/-(0.8km/30분)-옥산동고개/439고지-(2.5km/1시간)-30번국도/365고지-(2km/30분)-암마이산-(4km/1시간40분)-강정골재

 

6.코스별 산행시각 

 

중리마을(09:50)-신광치(10:10~15)-헬기장(10:50)-성수산(1059.7m)(11:20)-980고지(11:45)-709고지 헬기장(12:35)-식사시간(12:35~13:10)-옥산동삼거리(13:25)-옥산동고개(13:40)-501고지(13:55)-가름내고개(14:05)-30번국도(14:50)-은수사(15:30)-암마이산((15:40)-은수사(15:50)-탑사(16:00)-봉대봉(16:30)-강정골재(17:20)

 

 

7.산 행 기 

2004년 11월14일

어제저녁 지인들과 함께한 2차의 술자리를 마다하고 패킹한 베냥을 다시한번더 확인후 밖을 내다보니 

가로등 사이로 내리는 비는 옷을 적시기에 충분한 비라 우의를 꺼집어 내어 입고 집을 나선다.

오늘은 마이산 구간이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올거라는 기대와 함께 법원쪽으로 나가니 어떻게 알았는지 차가 한 대 미끄러져 선다.

 

청록관광

무거동, 진영휴게소을 둘러 일행을 태우고 산행 이야기를 하면서  인원을 파악해보니 25명이다.

이윽고 버스는 달려 두어시간만에 장계IC에 도착

장계IC를 빠져나와 삼거리앞에 선다.

 

 

이곳도 벌써 세 번째 이제는 낮선다는 생각보다 정겹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주논개 사당과 생가가 11km로 이곳에서 정반대의 거리인셈이다.

다시 신호를 받은 버스는 19번도로인 남원/계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장수쪽으로 10여분만에 장수 읍에 

도착한다.

그리고 다시 버스는 13번도로인 진안쪽으로 돌려서 20여분을 들어 가니 와룡자연휴양림의 갈림길인 

726번도로를 따라 들어 간다.

잠시후 지난번 하산했던 중리마을에 도착한다.

 

09:40 중리마을 도착

마이산 가시는 분을 제외, 22명의 악우님들은 산행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러는사이(중리마을, 산행준비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찍는) 일부는 간다는 말도 없이 출발하고 있다.

 

 

09:50 출발

잠시 올라서니 오른쪽 주차장에 흰색 코란도(서울0000) 한 대가서있다.

혹시 서울에서 정맥하시는 조진대씨가 아닐까 생각해보지만 학인할 게 없으니 그냥 비포장길따라 

오른다.

지난번에는 자갈이 많은걸로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흙 자갈을 깔아 발이 빠지는등 힘이 든다.

주변의 산천 초목은 벌써 겨우살이에 들어 갔고 흐르는 물소리만이 엊그제 내린비로 제법 소리내어 

흐르고 있다.

20여분후 신광치에 올라선다.

빠른 걸음이라 벌써 이마에 땀이 솟는다.

잠시 휴식하면서 지난번에 내려왔던 고랭지 채소밭에는 황량하기 그지 없고 주변에는 60년대나 봄직한 녹슨 함석집이 서있어 옛정을 더하고 있다.

 

 

 

10:15 신광치 출발       

잡초가 많은 밭지대라 제대로 된길이 없다.

단지 먼저간 선답자들의 발길이 산행로인 것을....

임도를 벗어나 들머리에 들어서니 마른 잡초구간이 힘겹다.

그리고 중간에 벌목한 잡목들이 이리저리 널려있어 이를 피하는 발길역시 가파른 오르막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어 처음부터 보통이 아니라는걸 느끼게 한다.

이윽고 무명봉을 올라서니 웅덩이를 누군가 파놓았고 그안에는 낙엽만이 수북하다.

덕유능선앞에는 멎진운해가 드리웠건만 카메라가 눈보다 못하다느걸 새삼 일깨워주는 듯 하는걸 

여러장의 사진을 찍어보니 알수 있는것만 같다.

그리고 잠시 평탄한길을 지나 키 한줄이나 되는 억새가 겨울의 힘에 부딪혀 꼬꾸라져 있는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서니 이곳 역시 벌목한 나무들이 여기 저기 널부러져 있어 피해가는 힘이 더든다.

미끄러운 낙엽길, 그리고 급경사의 오르막길, 끝까지 괴롭히는 벌목한 나무들

그리고 올라서는 900고지 능선

직진의 길이 선명하지만 시그널이 달린 정맥 마루금은 오른쪽 아랫길로 진행하도록 유도 한다.

새벽녘이나 밤에 운행할 때 조심해야할 지점이다.

미끄럽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이내 넓은 고냉지 밭이다.

잡초만 있는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더덕 밭이긴 한데 더덕 냄새가 없다.

다시 가장자리를 따라 이내 헬기장에 도착하는데 출발후 선두를 처음으로 대면하면서 잠시 휴식한다.

 

10:50 헬기장

10여분 휴식후 다시 길을 떠난다.

오솔길은 이내 임도길과 마주치는데 상마치 마을 에서 올라오는길인 것으로 보여 자주 이용하는 듯한 

길이다.

인도따라 10여분 오르니 길은 다시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서니 이내 무명봉에 오른다.

그리고 잠시 완만해진 오르막의 날등을 이어 가고 무명봉에 오르니 언제쯤 보일는지 기대되던 마이산, 

그마이산이 나무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바위 봉우리이다.

마이산, 드디어 마이산의 모습이 모습을 드러낸다.아마도 숲이 우거졌으면 보일 수가 없었겠지만...

그리고 곳곳의 나무 가지에는 간밤에 내렸듯한 짖눈깨비가 싸여있다.

잠시 날등을 이어 가니 오늘의 최고봉인 성수산에 도착한다.

 

 

11:20 성수산(1059.7m)  

잠시 휴식하면서 주변을 조망해본다.

신광치 2.2km/30번국도 7.0km의 이정표와 "전북 산사랑 산악회"에서 세운 정상표지판이 1059.7고지를 

홀로 지키고 있고  옆에는 삼각점이 자리하고 있다.

덕유능선과 지리능선의 운해를 잠시 바라보면 10여분 휴식후 출발한다.

진행 방향으로 잠시 들어 서니 길은 왼쪽으로 시그널이 많이 걸려 잇는가 반면에 오른쪽길은 길은 

선명하지만 다닌 흔적이 없어 보인다.

길은 왼쪽으로 돌아서 마이산을 바라보면서 내려 선다.

내리막길에 70년대 산림조림지역의 하나로 성장이 좋은 소나무를 많이 심었었는데 그 소나무를 리기다 

소나무로 하였는데 이곳도 예외가 아닌 듯 많은 리기다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그리고 헬기장을 만난다.

성수산 정상에 세워졌을 헬기장이 이곳에 만든 연유야 어찌 되었던건에 주변이 소나무로 싸여 쓸수 없는 헬기장이 되어 버린 듯 해보인다.

다시 출발

완만한 내리막길에 리기다 소나무와 전나무들이 번갈아 서있는 조림지대를 지나 한참을 내려 선다.

그리고 안부를 지나 이윽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짧은 구간이라 올라서니 봉우리를 전면에 두고 왼쪽 사면으로 돌아 나간다.

이어서 능선과 마주 하면서 짧은 오르막길의 무명봉을 올라서니 곧장 완만한 내리막길과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서니 고도상의 980고지에 올라선다.

 

 

 

11:45 980고지 

잠시 휴식하면서 마이산을 카메라로 당겨본다,

가스가 차인상태로 다가 오지만 그래도 외곽에서 바라볼수 있는 좋은기회라 열심히 카메라에 담아 본다.

그리고 과일도 나눠 먹으면서 잠시 휴식후 점심은 709 헬기장에서 먹기로 하고 출발한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마이산을 쳐다보고 내려서니 물 묻은 낙엽과 함께 미끄럽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키보다 큰 산죽이 펼쳐 진다.

언젠가 낙남정맥길에 만났던 산죽밭. 정말로 대단한 산줄밭이었는데....

잠시 벗어나니 이내 가파른 오르막길

무명봉에 올라선다.

그리고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서는데 올망졸망한 바위지대를 지나 날등을 잠시 이어가더니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지나 헬기장인 709고지에 올라선다.

 

 

12:35 709고지

넓은 헬기장(103-1-23)과 함께 삼각점(임실 420 2002재설)이 있다. 삼각점에는 노란색의 금속 경고판이 박혀있고 이곳에서 식사 하기로 하고 둘러 앉는다.

 

12:35~13:10 식사시간

된장찌개와 어우러진 점심 산해진미가 뭐란 말인가.

정말로 대단한 밥상이 차려진 점심식사

~~~~~~~~~~

과일로 후식을 먹으며  하나둘 출발한다.

 

13:10 출발

내려서니 안부에서 전면에 봉우리를 두고 길은 오른쪽 사면으로 빠져 낙엽이 발을 덮는다.

그리고 조금전의 우회했던 무명봉에서 내려오는길과 마주 하면서 이곳 역시 낙엽으로 푹신푹신한길을 걷는다.

배도 부르고 날씨도 좋고그냥 걷는대로......

오늘같이 좋은날 많이좀 갈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모두가 내마음같지 않으니....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내려서는데 직진 능선길에 왼쪽으로 가라는 시그널이 있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13:25 옥산동 삼거리

곧 바른길은 선명하지만 시그널은 모두 왼쪽으로 붙혀 있는 삼거리에서 시그널따라 왼쪽으로 내려선다.

계곡으로 향할 것 같은 길은 잠시후 오른쪽으로 돌아서 오른쪽에 봉우리를 두고 사면길로 들어선다.

야간운행시 조심해야할 구간임에 틀림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왼쪽에는 잘 자란 나무들과 함께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사면길을 따라 한참을 가니 주능선과 마주 하면서 내려선다.

신천 강씨 묘지 이다.

잘 다듬어진 묘지 앞에 사람들이 있어 가보니 내려서니 제를 지냈다면서 떡을 나눠준다.

앞서서 가던사람들은 주질 못했다면서 한봉지를 담아 준다.

점심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한입먹으니 맞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묘지 때문에 만들어진 임도를 따라 내려서니 지도에 나와 있는 비포장도로가 나타난다.

아마도 옥산동 가는 도로이지 싶다.

그리고 가로 질러 맞은변 들머리로 들어서니 제법 오르막길이다.

무명봉을 지나 내려서니 나무 사이로 왼쪽에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며 오른쪽으로는 임도 개설흔적과 

함께 많이 다닌듯한 안부에 도착한다.

그리고 이어 지는 오르막길 

무명봉에 오르는가 싶은데 길은 다시 평탄한 길이 이어지더니 오른쪽에 벌목지대를 두고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다.

그리고 501고지에 도착한다.

 

13:55 501고지

다시 북서쪽으로 방향을 돌아서 내려서니 잘자란 소나무들이 하늘을 치솟고 있는 내리막길에서 하늘을 보고 사진한장을 찍는다.

그리고 내려서는데 주인을 알수 없는 무덤을 지나 사거리 안부를 지난다.

지도에도 표기되어 있지 않은 안부를 지나 무명봉을 올라서니 오른쪽으로 약간 방향을 틀어내려서니 

오른쪽에는 벌목한 나무들이 어지러히 늘려 있는 가운데 웅덩이를 하나 만난다.

아마도 짐승을 잡기위한 웅덩이로 보이는데 깊이가 1m나 될성싶은 웅덩이 조심해여 할구간이다.

혹시나 발을 잘못 짚어 빠지기라도 한다면 다치기 십상이다.

서너개의 나무토막을 주어 덮어 놓기 했지만 이산행기를 쓰고 잇는 이시감에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은 우리네 인간이라는게 서글픈 생각을 해본다.

다시 출발해서 내리막에 내려서는데 이곳 역시 리기다 소나무가 멎드러지게 자라고 있는 송림지대를 

내려서니 2차선의 포장도로이다.

  

14:05 가름내고개(2차선 포장도로)      

도로가의 옹벽에는 "호남정맥"이라는 글씨가 페인트로 적혀있고, 고개 넘어는 서너대의 차량들이 와서 

호박등 수확을하고 있다.

그리고 옹벽위로 올라서니 오른쪽에 임삼밭이 들어서있고 인삼밭을 돌아서 올라서니 벌목한 공간에 

선두들이 쉬고 있다.

잠시 휴식후 다시 출발한다.

잠시 올라서니 난데 없는 임도를 만나는데 이임도는 11기의 묘지까지만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묘지 주인이 만들어 놓은듯해 보인다.

잘 다듬어진 묘지를 지나 여전히 오른쪽 벌목지대를 따라 넘어진 나무를 피해서 무명봉에 올라선다.

그리고 길따라 내려서니 오른쪽은 여전히 벌목지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나무로 길을 피해서 들어서니 

이번에는 왼쪽에 아예 민둥산이 되어 버린 벌목지대를 만난다.

명목은 수종 변경이 주목적이라지만 나무를 심어 가면서 수종 변경을 해야 함에도 풀한나 없고 길은 아예 막아 허리를 질러 나가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민둥 벌목지대를 올라서니 무명봉에 올라서는데 선두에서 시그널이 보이질 않는다 하여 주변을 찾아보니 길은 선명한데 시그널이 보이질 않아 다시 빽을 한다.

조금전의 무명봉에서 능선으로 붙어야 하는데 벌목한 나무를 쌓아놓은 지대를 피해 허리로 돌아간게 

화근이었다.

다시 돌아가서 능선삼거리에는 많은 시그널과 함께 마이산을 왼쪽에 두고 북쪽방향으로  들어 서니 

오른쪽에는 여전히 벌목지대인가 반면에 오른쪽 능선에는 벌목한지 오래되어 보이는 지대를 두고 

능선으로 붙어 나가니 벌목한 중간에 잘 다듬어진 묘지가 평화롭게 보인다.

마주보는 마이산을 바라보며 능선을 따라 돌아서 가니 길은 다시 마이산을 보고 숲속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잠시 내려서니 30번 국도인 은천이재에 내려선다.

 

14:50 30번 국도

곧장 오른쪽편의 밭머리를 보고 들어서니 밭머리 왼쪽에 논사이로 길이 묘지까지 연결되어 있고 묘지 

뒤쪽에는 페가 한채가 정맥능선을 지키고 있다.

엇갈려 누워 있는 평산 신씨의 부자지간의 묘에서 휴식한후 완만한 능선을 올라선다.

낮은 소나무와 함께 동네 야산같은 봉우리를 올라서길 수차레

어느듯 반 뭉게여진 무덤에 올라선다.

잠시 휴식후 다시 가라픈 오르막을 올라서니 무덤 두기를 더지나니 마이산 에 부딧친다.

퇴적암으로 자갈과 시맨트로 발라 놓은듯한 마이산

중간 중간에 바위가 빠져있는 모습과 또 중간에 자라고 있는 나무와 풀들

이모두가 서로 부딧끼며 살아가고 있다.  

마이산으로 오른쪽에 두고 내려서니 마이산 산신제단에 도착, 1990년10월11일 축조, 97년 10월28일

이자리에 축조된 마이산신 제단, 1413년 조선조 태종이 궁궐을 비워두고 10월12일 마이산제를지낸 

역사적 사실에 연유 10월12일을 진안군민의 날로 정하고 11일 오후부터 산신제를 지내고 있는는 

안내문의 설명을 보고  마이산 산신제단을 지나 은수사까지 내려선다.

 

 

 

 

15:30 은수사 (탑사 0.3km/남부주차장 1.9km/천황문 0.3km/북부주차장 0.8km)

섬진강 발원지라는 샘터에서 물을 한병 보충하는데 분명 섬진강 발원지는 데미샘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진짜 발원지는 어디란 말인가.

궁금증을 뒤로 하고 은수사내 대적광전 등을 사진에 담아두고 암마이산을 오르기 위해 계단길을 오른다.

많은 관광개들과 함께 종일 걸은 힘든 다리로 어렵게 한발자국 한발자국 계단을 오른다.

이윽고 북부주차장으로 넘어 가는 고개에 올라서는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과 같은소리인가.

1994년10월부터 2014년10월까지 10년간 식생 복원을 위해 천황문~암마이봉(0.6km),

그리고 천황문~물탕골정상(0.9km)의 구간을 폐쇄한다는 안내판이 서 있다. 위반시는 벌금 50만원이라는 안내판이 붙혀있고 입구를 막아 놓았다.

관광객들의 눈만 없으면 어찌해보겠지만 어려운 발걸음을 돌리기로 한다.

계단을 내려서서 은수사를 지나 탑사에 도착하는데 이곳에도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16:00 탑사

탑사라면 이갑룡 처사를 생각하는데 이갑룡 처사는 수행을 위해 25세때 마이산에 들어와  솔잎으로 

생식을 하며  신의 계시를 받아 탑을 쌓아다는 설이다.

탑을 쌓기 위해 30여년을 인근 30리 안팎에서 돌을 날라 기단부분을 쌓았고,상단부분에쓰인 돌은 각처의 명산에서 축지법을 사용하여 날라왔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한 절설같은 이야기이다.

더구더나  역고드름 역시 불가사의한 일이다.

오는대로 모여 증명사진 한 장 찍고 상가를 지나 오른쪽 이정표(북부주차장1.7km/남부주차장3.7km/성황당1.1km/광대봉)가 있는 봉두봉쪽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굉장히 가파른길이다.

얼마를 올랐을까 이곳에도 출입통제라는 안내판과 이정표(탑사0.3km/고금당3.6km/광대봉4.9km)가 

서있는걸로 보아 조금전 암마이보으로 오른는 길이 이곳으로 연결되는 정맥 주능선임을 알수 있다.

쉽게 올수 있는길을 습생보호라는 미명아래 마이산구간은 10년동안 넘지 못할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고무줄판이 놓여있는 가파른 봉두봉 오르막을 올라선다.

 

 

16:30 봉두봉  

540고지의 봉두봉  헬기장과 함께 헬기장 들머리에 정상 표지석이 세워져있다. 

다시 가파른 내리막길따라 내려서니 봉우리를 전면에 두고 오른쪽 사면길로 접어드니 암마이산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그리고 조금더 들어가니 이내 길은 왼쪽 능선으로 오르도록 유도 하고 있는데 오르막을 올라서니 

제 2쉼터에 도착한다.

5개의 나무의자와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멀리 마이산과 같은 바위봉우리, 그리고 그위에 전망대를 지은 비룡대, 10여분을 휴식하면서 주변을 

조망해본다.

그리고 다시 출발

제2쉼터를 내려서니 길이 아주 좋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정맥능선과 갈라지는 삼거리에 도착 

이정표(탑사1.1km/북부주차장0.8km/부부시비(탑영제)1.0km/금당사1.7km/남부주차장2.5km/광대봉)을 본다.

어디에도 정맥이라는 표시를 해놓은데가 없어 자칫 이곳에서 곤란을 겪을수도 있음을 알아 둘필요가 

있을 것 같다.

왼쪽 좋은길을 버리고 직진의 능선의 무덤을 지나 바윗길을 올라서니 이곳 역시 비룡대와 26번 국도를 

볼수잇는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전면에 놓인 바위 봉우리를 우회   전망이 시원한 삿갓봉 바위에 올라선다.

일부는 마이산 남부주차장에서 차를 탔다는 소식과 함께 목적지까지 빠른 걸음으로 이어 가기로 하고 

서둘러 출발한다.

잠시 내려서는 안부를 지나 봉우리를 하나 넘어서니 벌목을 해놓았다 

그것도 너무나 깨끗이...

가장자리인 능선길에는 어지러이 널려 있는가 반면에 줄을 이어서 나무를 쌓아두어 어렵게 빠져 나간다.

아마도 벌목을 위해서 만든 임도를 따라 내려 서다 다시 숲속으로 이어지니 이번에도 어지러히 널려있는 벌목지대를 지나니 잘가꾸어 놓은 잔디며 관리가 잘된 가족묘지를 오른쪽에 두고 내려선다.

물론 묘지를 관리하기위해 만든 임도를 따라 내려서니 다시길은 임도를 오른쪽에 두고 능선으로 붙는다.

잠시후 오른쪽에 밭을 두고 능선길을 이어가니 잡목이 많아 길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한동안 어렵게 내려서니 차량들이 쏜살같이 달리는 26번 도로의 절개지 상단부에 선다.

왕복 4차선 굉장한속도를 내면서 잘주 하고 있다.

강정골재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내려서는데 우리가 타고 갈 차량이 모텔입구에 서있어 오른쪽 

방향으로 내려선다.

선덥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왼쪽으로 내려서라고 되어 있는데....

어쨌든간에 오늘의 목적지인 26번 국도 강정골재

4차선 포장도로이다. 중앙선 분리대는 어른 키만큼 높다. 굉장한 속도와 함께 수시로 오는 차량으로 인해 중앙분리대를 넘기가 함들 것 같지만 무모한 도전은 또 시작된다.

물론 일부는 체인지도로를 따라 둘러온이도 있지만....

 

 

  

 

17:20 강정골재

신광치에서 강정골재까지 14.8km, 7시간 10분의 시간

너무나 하루해가 짧다는 생각을 해본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버스에 짐을 풀고 하산주를 준비하니 벌써 어둡다.

일부는 렌튼을 가지고와 하산주를 거드는데 두부와 오뎅이 휘나레를 장식한다.  

  

마이산 전설

 아득한 먼 옛날 큰 죄를 지어 하늘 나라에서 쫏겨난 한 산신 부부 내외가 이세상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 세상에서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며 살면서 수 억겁 동안 속죄의 시간을 보냈다. 오랜 속죄의 날들을 보내고 드디어 하늘 천상계로 승천의 기회가 열렸다. 이때 남편 산신이 아내 산신에게 말했다. 

"이제 하늘 나라로 다시 올라갈 때가 되었소. 그러나 우리가 승천하는 모습이 사람들 눈에 띄면 부정을 탈것이니 사람들이 깊이 잠든 한밤중(자시11시~01시)을 택해 승천하는 것이 좋을 듯하오." 

그러나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한밤중은 너무 무섭습니다. 게다가 밤중에 일을 치르자면 너무 피곤합니다. 그러니 푹 자고나서 이른 

새벽에 올라가십시다.누가 꼭두 새벽에 잠 안자고 우리들이 승천하는 것을 훔쳐보고 있겠습니까?

남편 산신은 일을 그르칠까 걱정되었지만 아내 산신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오랜 속죄의 날들이 무위로 돌아갈지도 몰라 불안 했지만 이튿날 새벽에 승천하기로 마음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새벽,산신 부부는 마침내 승천을 시도했다. 하늘을 향해 산이 쑥쑥 솟아가고 있을 때 아랫마을의 어느 부지런한 아낙네가 치성을 드리기 위해 정화수를 뜨려고 우물을 찾았다가 그현장을 목격하고 말았다. 

아낙네는 생전 처음 보는 그 광경에 놀라 비명을 질러 댔다.

이 소리에 부정을 탄 산신부부는 결국 꿈에도 그리던 승천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굳어져 지금의 암수 마이봉이 되었다고 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남편 산신은 아내 산신을 걷어 차고는 두아이를 빼앗아 버렸다는 뒷얘기도 전한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수마이봉(해발 673m)은 두 아이를 거느리고 있는 듯한 형상을 취하고 있고, 

암마이봉(667m)은 수마이봉을 등지고 앉아 한없이 고개를 떨군 채 후회하는 듯한 형상을 취하고 있다.

 

이런 내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옛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기이한 봉우리가 하늘 밖에서 떨어지니

쌍으로 쭈빗한 모양이 말의 귀와 같구나. 

높이는 몇천길이 되는 데

연기와 안개속에 우뚝하도다. 

우연히 임금의 행차하심을 입어

아름다운 이름이 만년에 전하네. 

중원에도 또한 이름이 있으니

이름과 실제가 서로 비슷하도다. 

천지 조화의 교묘함은 실로 끝이 없으니

천지가 혼돈했던 처음일을 생각하도다. 

 

          -김종직(성종때의 성리학자)

  

옛시인의 노래에 등장한 임금은 바로 조선의 3대 임금인 태종이다. 

태종이 남행해서 마이산이라는 이름을 짓기전에 이산은 신라때 

서다산(서쪽에 많은 산들중에 가장 아름답게 쏫은산!, 쏫았다, 섯다) 그리고 고려 시대에는 

용출산(용이 하늘로 쏫아 오를듯 한 기상) 이라 불렸다. 

그리고 조선의 태조는 속금산(금을 묶어 놓은 금덩어리 산! .., 땅속에서 쏫아난 산 )이라고 이름  

붙였다고도한다. 

이중에서 서다산과 용출산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즉 서다를 이두식 표기로 볼 때 그뜻은 '섯다'이고 그 한문식 표현은 용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