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금오산(468m)
1.산행구간 : 망월사-삼릉-상선암-금오산-금오정-부흥사-포석정-삼불사-망월사
2.산행일자 : 2016. 6.04(토요일)
3.산행거리 : 8.16km
4.산행참가자 : 아내
5.코스별 산행시각
◎ 망월사 주차장 출발(09:20)
◎ 삼릉 (09:30)
◎ 상선암(10:05~10)
◎ 금송정(10:20~30)
◎ 금오산/468m(11:00)
◎ 헬기장(11:50)
◎ 상사바위(11:55)
◎ 금오정/식사(12:05~12:20)
◎ 늠비오층석탑(12:35)
◎ 부흥사(12:40)
◎ 이정표/금오봉2.7km,포석정주차장1.3km(12:48)
◎ 공원지킴터/금오봉(임도방향)4.2km,포석정주차장0.5km,금오봉3.5km,부흥사1.5km(12:55)
◎ 포석정/통일전 주차장8.5km,금오봉4.7km (13:02)
◎ 경주 지마왕릉(13:05)
◎ 삼불사 주차장 (13:10)
6.산행기
연휴 3일.......
뭐 내하고는 상관 없는일이지만(6개월짜리 백수) ...
전국적으로 고속도로는 날리이고 ..
해서 나도 그들 한축에 끼고는 싶지만 원하는 그섬지방은 숙박장소가 이미 동이난터라...
그리고 남부지방은 비가온다니 ....
해서 포기하고는 가까운 산행을하려니 주변 많고 많은 산가운데(영남알프스 산군) 마땅히 가보고싶은 그런곳이 없어...
엊그제도 그제도...마음만 먹으면 가는 그런 산이다 보니...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릅니다만....
해서 오늘은 경주남산엘 다녀오기로 합니다.
이곳도 몇일전에 다녀왔지만 언제나 가도 괜찮은 곳이긴 합니다.
경주 남산은 서라벌의 진산으로,
고위산(高位山, 494m)과 금오산(金鰲山, 468m) 등 2개의 봉우리가 남산을 대표하는 산으로
이 중 금오산은 남산을 통칭하는 이름으로도 사용되기도 하지만 근래들어서 산행길이 열리면서 그대표성 이름도 바뀌어 가는것 같습니다.
이제는 남산하면 고위산이 연상되는 것도 아마도 최고의 봉우리라 그리하지 싶습니다.
문헌에 의하면 남산은 길이 10여㎞와 34곳의 계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라벌을 지키는 요새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있는 나정, 신라최초의 궁궐터인 창림사, 신라가 종말을 맞았던 포석정이 있던 곳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신라 개국 이래 줄곧 신라인과 호흡을 같이하며 신성시되어 왔음을 알 수 있는 산이기도 합니다.
또 남산은 신라시대의 불교유적지로서도 불교가 신라에 전파되면서 숭산신앙. 암석신앙과 연관된 불교문화는 남산에 집중되고 있는데요,
지금까지 발굴된 유물만해도 유적은 절터 112군데로(암자터 포함), 석불 80체, 석탑 61기, 석등 22기 등이며. 금오산, 고위산, 도당산, 양산, 일대 즉 경주시 인왕동을 비롯한 4개 동과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등의 지역을 1985년 사적 제311호 <경주남산일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라인들은 바위에 부처를 새긴 것이 아니라, 바위 속에 있는 부처를 보고, 정을 들고 바위 속에 숨어 계신 부처님을 찾아낸 것이라는데요
남산은 자연과 예술이 조화되어 산 전체가 보물이니 세계에 그 유례가 없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살아 있는 박물관이라고도 부르는것 같습니다.
오늘 계획은 삼릉쪽으로 올라 유적지를 관람후 상선암, 그리고 금오산, 고이산을 둘러 하산 하는그런 계획입니다.
잘될런지는 모르지만...
요새 마누라가 부쩍늘어난 뭣때문에....
6월 4일.......
집에서 목적지인 삼불사 주차장까지는 30여분정도.....
그리 먼거리가 아니기에 자주 이용하기도 하지만
삼불사 주차하려다 망월사에 주차를 합니다.
산행은 삼릉쪽이기에 잠시지만 둘레길을 이용 삼릉으로 올라섭니다.
배리 삼릉이라 합니다.
경북 경주시 배동에 있다해서.....
사적 제219호로 지정되어 있는 삼릉...
남산의 서쪽에 동서로 세 왕릉이 나란히 있어 삼릉이라 불려지고 있습니다.
서쪽으로부터 신라 제8대 아달라이사금, 제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 등 박씨 삼릉의 왕의 능이라 전하고 있습니다.
삼릉주변 소나무
아름다운 동행
삼릉곡 제1사지 탑재와 불상
계곡에 흩어져 있던곳을 모아 정비였다는 설명입니다.
삼릉곡 제2사지 석조여래좌상
높이 1.6m의 불상으로 64년 8월 동국대 학생들에 의해 3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머리가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합니다.
손과 머리가 없었지만 몸이 크고 옷주름이 매우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어 통일신라 불상으로 매우 아름다운 작품 중 하나라 합니다.
삼릉마애관음보살상
1972년 12월 29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되었다합니다.
높이 약 2.4m의 석주형(石柱形) 암벽 남면에 돋을새김되어 있는 관음보살상이더군요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선각(線刻 : 선으로 새김)의 마애불상군입니다.
불입상이 본존인 삼존상과 불좌상이 본존인 삼존상이 각각 다른 바위 면에 새겨져 있는데요
왼쪽부터 대세지 보살, 아미타불,관세음보살, 그리고 오른쪽 벽면에 보현보살,석가여래,문수보살의 그려져 있습니다.
석조여래좌상
1964년 동국대 탐사팀에 의해 땅속에서 발견된 석조여래좌상으로 발견당시 머리부분도 양쪽 무릎도 파손 되었지만 나머지는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합니다.
거진 원형에 가깝게 복원 되었더지만 눋기에 가까운 복원 작업....
그래도 보물 666호로 지정되어 있다 합니다.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 삼릉곡 제6사지 석탑터
능선에 있는 불상은 2008년 복원 되었고 그리고 복원을 위해 발굴조사를 하던중 1930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진 삼층석탑의 조각이 발견되어 원 위치로 확인되었다는 설명......
삼릉곡 제6사지 마애선각여래좌상....
얼굴부분만 선각되어 있는 마애불상입니다.
부드러운 선으로 새겨진 원만한 상이라 합니다.
상선암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三陵溪谷 磨崖釋迦如來坐像)
안내판을 보면
이 불상은 남산의 북쪽 금오봉(金鰲峰)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작은 봉우리를 형성한 바둑바위의 남쪽 중턱에 위치해있다.
자연 암반을 파내어 광배(光背)로 삼았는데 깍아내다가 그만둔듯 거칠다.
높이 7m로 냉골[三陵溪]에서는 가장 큰 불상이고 남산의 북봉인 금오봉 을 향하여 앉아있다.
이 불상의 머리는 거의 입체불에 가깝고, 그 아래는 선으로만 조각되어 있다.
풍만한 얼굴에 눈섭은 둥글고, 눈은 반쯤 뜨고 입은 굳게 다물었다.
민머리에 턱은 주름이 지고 귀는 어개까지 큼직하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져 있으며, 가슴부분의 벌어진 옷 사이로 속옷의 매듭이 보인다.
오른손은 엄지와 둘째, 셋째손가락을 굽혀 가슴에 올렸고 왼손은 무릎에 얹었다.
결과부자(結跏趺坐)한 양 다리의 발 표현과 연꽃대좌가 아주 특이하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는 설명입니다.
조망
금오산..........
금송정
금송정은 금오산에 있던 정자였는데 경덕왕때 음악가 옥보고가 가야금을 타며 즐기던곳이라 합니다.
특히 이곳 냉골 바위산은 그모습이 괴상하고 거대한 바위 더미로 밑에서 쳐다보면 장상은 구름이 걸린듯 드높아 보인다는 설명....
바둑바위에서 보는 경주시내
상사바위
금오산
헬기장
상사바위는 높이가 약 13m 길이가 25m 가량되는 큰 바위로 이 바위에 빌면 상사병도 고쳐 주고 아기도 낳게 해 준다는 상사바위입니다.
금오정입니다.
기와집으로 멋지게 만든 금오정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남산일원의 안내판도 서있고....
포석곡 제 7사지 큰늠비 절터 주변 석조물..........
포석곡 제 7사지 큰늠비 절터로 불리는 이곳에 오래전부터 폐허가 된 절터에 탑재들이 흩어져 있었다.
1층 탑신과 옥개석 기단갑석등 6점의 석조 유물들은 양식으로 보아 통일 신라시대에 조성된 삼층석탑의 부재로 추정된다
늠비오층석탑
신라문화진흥원의 자료에 의하면
전망대에서 시작하여 두 줄기 여울물이 포석계의 본류로 흘러드는데 북쪽으로 흐르는 여울을 작은 늠비라 하고 남쪽으로 흐르는 여울물을 큰 늠비라 부른다.
큰 늠비, 작은 늠비 사이에 솟은 삼각산이 늠비봉이다.
이늠비봉 위에 목탑을 본떠 세운 석탑(石塔)이 있었다.
지금은 파괴되어 탑재들만 흩어져 있으나 장하던 옛 모습을 추측할 수는 있다.
산 꼭대기에 솟아 있는 바위 윗면을 깎아 내고 몇 개의 가공석을 보태어 자연스러운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대충 다듬은 석재로 탑을 쌓아 올렸던 것이다.
지금 남아 있는 탑재들로 미루어 보아 옥개석의 낙수면이 넓은 백제계열의 오층석탑이었다고 추측된다.
4개의 석재를 조립하여 한 개의 옥개를 이루었는데, 만일 옥개받침까지 조립식이었다면 하나의 옥개에 여덟 개의 석재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 개의 옥개석을 여러 개의 석재로 조립하여 만든 예는 통일신라 초기의 감은사(感恩寺)나 고선사(高仙寺)의 탑에서도 볼 수 있는 예이지만 이 탑의 특이한 점은 옥개의 낙수면 모서리에 귀마루가 높게 새겨져 있는 점이다.
또 이 탑의 위대함은 산봉우리를 기단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삼각산 위에 솟아있는 자연바위를 잘라 버리고, 모자라는 부분에는 다듬지 않은 석재를 보충하여 자연 반, 인공 반인 기단을 만들어 놓았다.
얼금얼금 깨뜨린 석재들은 인공적인 탑신에 어울리고 우툴두툴한 자연 석재들은 자연적인 바위산에 조화되어 삼각산은 하늘에 닿은 탑으로 승화되었다.
자연과 인공을 연결시켜 놓은 위대한 착상이라든가 석재를 얼금얼금 다듬은 구수한 수법은 우리 예술이 지닌 가장 고상한 장점이라 하겠다.
크고 작은 기묘한 바위로 얽혀 두 줄기의 계곡물 사이에 솟은 삼각산 위에 탑이 섰으니 산이 바로 하나의 탑이다.
부엉계곡은 이 탑 하나로 불국토의 영기(靈氣)로 차 있는 것이니 자연과 인공이 이렇게 조화된 예는 드물 것이다.
늠비오층석탑 주변터....
부흥사 입니다
계곡
지킴터......
저 차량은 누굴 지키나요
포석정 이정표및 지도
포석정앞입니다.
경주 서쪽 이궁원에서 열리는 연회를 위해 만든 것으로 시냇물을 끌어들여 포어 모양을 따라 만든 수구에 흐르게 하고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시며 즐겼다고 합니다.
통일신라시대에 화려했던 궁정생활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인데요
927년 경애왕이 왕비·궁녀·신하들과 놀다가 견훤의 습격을 받아 죽은 곳이기도 하죠
신라 제6대 지마왕(112~134)을 모신곳으로 밑둘레 38m 높이 3.4m로 흙을 둥글게 올린형태미며 별다른 특징읜 없다는 설명
파사왕의 아들로 태워난 23년간 재위 하면서 가야 왜구 말갈의 침입을 막아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는 안내판입니다.